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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씨 타계] 업적으로 본 정주영
입력2001-03-22 00:00:00
수정
2001.03.22 00:00:00
車·조선 세계수준 올려놔기차 선로와도 같았다. 정주영 회장과 한국경제는 오랜 친구처럼 그렇게 50여년을 나란히 달렸다. 정회장의 실패는 한국경제의 시련이었다. 그의 성공은 한국경제의 발전이었다. "나는 '현대'를 통해 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냈다."(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이땅에 태어나서')
이는 허무맹랑한 자랑이 아니다. 리처드 스티어즈 미국 오레건 대학교수는 "정주영같은 경영인이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껏 농업국가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단순히 '성공한 기업인'이 아니었다. 그는 88올림픽을 유치, 한ㆍ소 수교, 한ㆍ중 수교 등을 이끌어낸 지도자였다. 업적으로 '정주영'을 본다.
◇국내 건설업의 선구자
시작은 늦었지만 국내 건설업의 초석을 다지고, 꽃을 피운 사람이 정주영회장이다. 그는 낙동강 고령교 공사, 서울5대 한강교 공사 등으로 실력을 다진 뒤 소양강 댐을 사력댐으로 건설해 콘크리트 댐을 주장하던 일본업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현대가 건설한 경부 고속도로는 아직까지도 한국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다.그는 "건설에서 잘하는 사람은 뭐든 잘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한평생을 보냈다.
◇중화학의 씨에서 결실까지
그는 모두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공업입국'의 꿈을 일궈냈다.
68년 포드와 합작해 '포드 코티나'를 조립하던 현대는 10년 뒤 자체 기술로 개발한 '포니'를 출시한다. 86~87년에는 2년 연속 '자동차 왕국' 미국에서 수입차 중 최고의 매출을 올리며 '메이저' 대열에 합류했다.
또 유럽이 200년, 일본이 100년이 걸쳐 육성한 조선업을 단 5년만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지금 현대중공업은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며, 한국은 세계 최대의 조선국이다.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운다
'해외 진출'의 문을 연 사람도 정주영이다. 65년 현대가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따냈을 때 박정희 전대통령은 "한국도 외화를 벌기 시작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현대는 베트남 캄람만 미 해군기지공사, 중동 주베일 프로젝트(9억3,000만달러 규모), 이라크 공사(50억 달러), 말레이시아 페낭교 공사(2억5,500만 달러) 등으로 '오일 달러'를 벌어들여 한국경제를 '오일쇼크'에서 구해냈다.
◇'바덴바덴의 기적'과 북방 외교
'생각하는 불도저' 정주영은 88 올림픽 유치활동을 진두지휘, '바덴바덴의 기적'을 이끌어냈다. 관련 인프라 구축에 6조원이 투자된 서울 올림픽은 침체된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 전세계 161개국이 참가, 사상 최대로 치러지면서 한국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발언권을 강화하게 된다.
올림픽 이후 정주영은 "경제가 필요하면 정치가 따라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북방외교의 주춧돌을 놓았다. 그는 한국 기업가로는 처음으로 89년 소련, 90년 중국을 공식 방문했고, 이는 한ㆍ소 수교, 한ㆍ중 수교로 이어졌다.
◇남북 화해와 평화
정 회장은 89년 남한 고위인사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공식 방문한 데 이어 98년에는 소떼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북한 지도부를 설득,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반세기 닫혔던 남북한 가족이 상봉하는 등 한반도의 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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