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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타협]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 빠져 알맹이 없는 선언"… 속타는 재계

"정부, 노동계 반발 의식 비정규직 개선에 초점"

'노동 이동성 확보' 되레 인건비 부담만 가중

강제성 없어 '임금피크제'처럼 겉돌 가능성

김대환(오른쪽) 노사정위원장이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사정위 본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재계는 이번 합의로 가뜩이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했다. /=연합뉴스


"알맹이 없는 선언적 의미의 레토릭(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계는 '대타협'을 빌미로 경영계를 압박할 겁니다.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을 외치는 정부는 정책의 초점을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맞추고 있습니다. 노동계의 압박과 이에 편승한 정부 정책 사이에서 재계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입니다." (대기업 인사담당자 A씨)

노사정은 23일 이중구조 타파와 통상임금·정년연장 등의 현안 해결을 핵심으로 한 합의문을 도출하며 대타협을 이뤘다. 일자리 창출과 노사 상생을 동시에 도모하기 위한 이번 노사정 대타협은 지난 1998년과 2004년·2009년·2013년에 이은 다섯 번째다.

대타협의 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재계는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하는 모습이지만 속내에는 우려 섞인 불만이 가득하다.

A씨의 지적처럼 가이드라인 수준인 합의문이 당장 실효성은 부족하면서도 향후 협상 과정에서 노조의 압박 카드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당초 '정규직 과보호 해소'를 강조하던 정부가 비정규직의 처우를 높이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틀었다는 점도 재계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노동계 반발 의식…'해고요건 완화'는 빠져=이날 정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이 도출한 합의문에는 결국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이 빠졌다.

재계는 그동안 경영위기시의 집단해고와 별도로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저성과자 해고에 대한 가이드라인 설정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원장은 "(처우가) 높은 것은 내리고 낮은 것은 올리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애초에는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정규직 과보호 해소가 노동시장 개혁의 필수요건"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와 비정규직 여건 개선의 '투트랙'으로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었다.

또 이날 이뤄진 노사정 대타협을 이 같은 정책추진의 핵심 기반으로 삼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정책방향의 시계추는 점점 비정규직 처우 강화로 기우는 모양새다. 노동계의 반발을 감안하면 이미 추상적으로나마 법에 명문화돼 있는 해고요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작업의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선은 직접고용 촉진, 사용기간 연장 등을 핵심으로 하는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입법을 노사정위 논의와 병행하면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합의사항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날 합의문에는 '노동 이동성' '고용·임금·근무 방식 등 노동시장의 활성화'처럼 기업의 의견을 반영한 듯한 문구가 일부 포함됐으나 재계는 이에 대한 가벼운 기대조차 경계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강제력이 담보되지 않는 형식적 수준의 의견 합일은 개별 사업장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동안의 대타협 사례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노사정은 산업계와 노동계 안팎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대타협에 성공했다. 당시 합의문의 핵심 내용은 '60세 정년 안착을 위한 임금피크제 협력'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시간제 일자리 활성화' 등이었다.

하지만 1년반이 지난 현재까지 어느 항목도 산업 현장에서 제대로 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김 원장은 "독일·스웨덴 등의 유럽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노총과 경총의 대표성이 약하니 통제력도 강하지 않다"며 "합의 후 정리해고 관련법을 통과시킨 1998년을 제외하면 '상징적 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 대타협 사례는 없었다"고 진단했다.

◇"실적 안 좋은데…인건비는 급증할 것" 기업 울상=노사정의 이날 합의 내용은 '노동 이동성 제고'와 '비정규직 여건 개선'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재계는 비정규직 처우 강화는 물론 경영자의 인사관리 권한을 제한하는 이동성 확보 방안 역시 장기불황 속에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오히려 가중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번 노사정 합의는 노동계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며 "대내외적인 위기요인이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인건비 부담마저 늘어나면 줄줄이 실적부진의 늪에 빠진 주력산업의 돌파구 찾기는 점점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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