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말 시한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양국 협상단이 협상 타결을 위해 당초 목표인 ‘높은 수준의 FTA’는 포기하는 양상이다. 높은 수준의 FTA를 목표로 한 양국의 상호 개방 요구안이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단은 낮은 수준에서라도 협상 타결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낮은 수준의 FTA로 협상 타결 모색=양국 협상단은 이왕 시작한 협상을 시한 내 마무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반면 양국간 개방 요구안을 들여다 보면 입장차가 매우 큰데 시간은 없다. 양국 협상단은 이런 상황에서 각자의 카드를 관철시켜 개방 속도를 앞당기고 폭을 늘리기보다 서로 덮는 데 치중하는 모습이다. 서비스 분야가 특히 두드러져 한미 FTA를 통해 교육ㆍ의료ㆍ법률ㆍ회계 등의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던 정부의 계획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는 아예 미국 측이 제대로 된 시장 개방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김종훈 우리 측 수석대표는 “서비스 분야에서 미 측의 관심사항인 통신사업자 지분 제한, 방송ㆍ시청각 서비스 문제, 우리 측 요구인 해운 등을 빼고는 거의 대부분 기존 제도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법률ㆍ회계 등 지식서비스 분야를 예로 들며 “미국과 동조화를 통해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리고 일자리를 만들 욕심이었으나 우리 측이 협상을 너무 잘해 (그 부분을) 잘 안 열어주고 미국도 애를 별로 안 써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조달시장 개방에 있어서도 미 측이 주정부를 완전히 배제했고 이에 따라 우리 측도 지방자치단체와 공기업 분야 조달시장은 개방에서 제외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FTA 목표의 하향 조정은 서비스나 조달 분야에 머물지 않고 상품 분야로까지도 확대될 조짐이다. 우리 측이 민감 농산물에 대한 미 측의 시장 개방 요구에 보수적으로 대응하면서 미국 측 역시 섬유 분야의 관세철폐 등에 소극적인 양상이다. 협상단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 반발 등을 감안해 양국이 농산물과 섬유 분야의 개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갈 것 같다”고 전했다. ◇한미 FTA 타결 영향은 여전히 막대해=당초 목표 수준보다 낮아져 한미 FTA의 파괴력은 줄겠지만 그렇다고 영향력이 작은 것은 아니다. 특히 시간이 갈수록 개방이 확대돼 한미 FTA는 한국 경제ㆍ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우선 자동차 세제개편, 의약품시장 개방 확대 등에 있어 미국 측의 요구가 일정 부분 수용될 것으로 알려져 국내 자동차업계와 제약업계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차를 비롯, 일본ㆍ유럽계 자동차 메이커가 한국 시장 공략의 고삐를 더욱 죌 것으로 보여 현대ㆍ기아차의 어려움은 커질 가능성이 특히 높다. 물론 현대ㆍ기아차의 대미 수출경쟁력이 일부나마 개선될 수 있다. 국내 의약품시장에 대한 다국적 제약사의 지배력도 확대될 것이 확실시된다. 자동차 세제개편은 국내 조세제도 전반의 변화도 동반할 수 있다. 전면적인 개방은 아니더라도 미국 농산물의 국내 시장접근성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금융ㆍ통신ㆍ방송 등도 개방 내용이 확정되면 어떤 식으로든 세계적인 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로 국내 노동ㆍ환경 문제에 대해 미국 측 노조나 시민단체가 간섭할 수도 있으며 지적재산권 보호 경향 및 위반시 벌칙 등도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국가 소송 규정에 따라 정부의 특정 정책 추진이 더욱 험난해질 수도 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개방 수준이 당초보다 줄었지만 서비스 분야만 보더라도 시장개방에서 제외되지 않은 분야는 자동으로 개방되기 때문에 미래에 어떤 충격을 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