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없는 고졸 근로자
생산직 한정에 임원 승진은 ‘하늘의 별 따기’…직군 확대하고 ‘유리 천장’ 해소해야
직장 내 세대 갈등만큼이나 한국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학력 차별 문화가 여전히 뿌리 깊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고졸 채용이 생산직 위주로만 이뤄질 뿐 아니라 고위 임원으로 승진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현재의 관행이 지속 된다면 학력 차별·인플레이션 해소를 위한 고졸 채용 확대의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기업들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부터 강력하게 추진돼 온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채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현대차는 오는 2021년까지 마이스터고 2학년생을 대상으로 총 1,000명의 우수 인재를 선발해 졸업 때까지 단계별 집중교육을 거쳐 회사의 정규직으로 최종 채용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 역시 지난 2012년부터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을 대상으로 성적·기능 우수자를 특별 채용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고졸 채용에 나서고 있음에도 채용이 대부분 생산직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제조업의 대다수 생산직 근로자는 아직 까지 고졸이나 전문대 출신으로만 채워져 있으며 신설된 고졸 채용 프로그램 역시 생산직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한정된 직군은 좁디 좁은 승진 기회로 이어진다. 생산직이 아닌 일반 사무직이나 연구개발(R&D) 직군에서 근무하는 고졸 출신이 거의 전무 하다 보니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아닌 고위 임원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들의 고졸 채용 확대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8년 이후 고졸 취업률이 61~62% 수준을 맴돌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가운데 차별 문화 해소와 능력 중심의 채용 정책을 위해 고졸 직군 분야를 폭넓게 확대해 나가는 기업도 있어 주목된다. 지난 2012년 이후 삼성그룹이 실시하고 있는 고졸 공채는 기존의 생산직 위주의 채용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직·사무직·기술직 등 다양한 신규 직무를 발굴해 문호를 개방한 것이 특징이다. 또 지난해부터는 R&D 분야와 영업직까지 선발 직군을 확대했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한때 반짝했던 고졸 채용 열풍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최근에는 대졸자 위주의 학력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우수한 고졸자들이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고졸 직군을 확대하고 커리어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학력 인플레이션 해소 차원에서 기업들의 고졸 채용이 꾸준히 확대될 필요가 있으며 이들 고졸 출신들이 직장 내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인사 제도의 개편과 멘토링 시스템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들이 근로자의 능력과 업무 성과를 객관적 지표에 의해 평가해 인사에 반영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승진에서도 고졸 출신이 느끼는 ‘유리 천장’이 사라지면 학력 차별 문화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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