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외환시장은 수요ㆍ공급의 원리가 사라진 비이성적 무대다. 한마디로 '악 소리' 나는 시장인 셈이다. 유럽의 재정위기에 천안함 사태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여기에서 파생된 달러 기근 현상까지 이어지는 '트리플 패닉'에 시장이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원화의 투매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시장은 '정부의 손길(달러 매도 개입)'만을 기다리고 모습이다. ◇달러 공급이 사라졌다=이달 초 외환시장에는 달러 매도 물량이 넘쳐났다.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대 초중반을 그리던 시점. 수출업체를 중심으로 시장에 나온 달러 물량은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무려 150억달러로 추정된다. 역외에서도 달러는 넘쳤다. 1,100원대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던 환율이 갑자기 올라가자 '이때'라고 생각하고 내다 판 것이다. 환율이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들 것이란 판단이 나오면서 달러 매도는 지속됐다. 하지만 시장 주체들의 이런 판단은 스스로 올가미를 만들고 있었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심각해지고 천안함 문제까지 겹치면서 환율은 꼭지를 잃어버린 듯 상승 궤도를 탔다. 그리고 순식간에 1,200원을 넘어섰다. '단기 천장'으로 여겨지던 1,200원이 뚫리자 시장은 급격하게 통제력을 잃기 시작했다. 정작 시장이 흔들릴 때 달러 물량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매수자만 있고 매도자는 없이 굴러가는 상황"(정미영 삼성선물 팀장)이 발생한 셈이다. 이날 스페인 정부의 은행 국유화 소식으로 불안함에 떨던 시장은 북한의 '전투 태세 돌입'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순식간에 1,277원까지 치솟았다. 제대로 된 거래도 없이 곡선만 위로 올라가는 전형적인 패닉의 무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기술적 저항선 무의미… 외인 투기세력도 대규모 손실=유로존의 위기 확대와 북한 리스크는 기술적 흐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25일 오전까지 외환시장의 흐름상 딜러들이 본 기술적 저항선은 일차적으로 1,265원, 2차적으로 1,320원이었다. 하지만 '더블 악재'와 맞물린 수급의 공백 상황에서 시장은 아무런 통제 장치 없이 고삐가 풀렸다. 시장의 패닉은 꼬리가 몸통을 흔들 듯 시장을 좌지우지했던 역외선물환시장(NDF)의 외국인 투기 세력조차 녹다운시켰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역외세력은 환율 하락 시기에 1,100원대 초중반에서 팔면서 하락을 주도했는데 환율이 예상외로 상승세로 돌아서자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고 전했다. "아래 쪽(하향)만 보다가 기술적으로 꼬여버린 형국"이란 얘기다. 중장기적인 흐름으로도 외국인은 진퇴양난에 몰렸다. 외국인은 지난해 초부터 13개월 동안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50조원 이상 쓸어 담았다. 이들이 매수한 평균 환율은 1,200원 안팎. 환율이 올라갈수록 외인은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손실을 피하기 위해 달러를 사고 이것이 다시 환율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월말 고비… 단기적으로 1,300원 천장될 듯=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이달 말이 환율 흐름의 고비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분간은 달러 공급 부족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1,300원을 뚫고 올라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양대 악재의 방향성을 점치기 힘든 만큼 환율의 곡선을 점치는 것 자체가 무리지만 정부가 무작정 위로 올라가도록 놓아두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외환 당국자도 "월초가 되면 네고 물량이 나오고 역외 세력의 손실을 청산하기 위한 거래도 끝이 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전망도 현 시점에서의 막연한 기대일지 모른다. 시장은 지금 스스로의 자제력을 잃어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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