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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영원히 잠들다] 靑巖을 보내며…


'철강왕' 고(故) 청암(靑巖)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지난 17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영면했다. 지난주 청암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는 각계각층 인사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고 하나같이 철강왕과의 돌연한 이별을 슬퍼했다. 청암의 죽음은 큰 슬픔이었지만 남은 이들을 하나된 마음으로 묶어주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박 회장은 경제 토대를 만든 우리 시대의 거목"이라며 슬픔을 드러냈고 진보성향의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도 "박 회장은 우리 경제의 오늘을 있게 한 대한민국 경제의 아버지였다"며 비통해했다. '철강거목'의 죽음 앞에선 좌도 우도 따로 없었다. 그만큼 청암의 삶은 도도한 것이었다. 청암은 제철을 통한 애국을 평생 신조로 살아온 철강왕이었다. 그는 생전에 대한민국 철강독립이라는 조국의 지상명령을 충실히 완수한 산업화의 일등공신이다. 청암이 없었다면 포스코 신화도 없었을 것이고 세계최고 경쟁력의 자동차ㆍ조선ㆍ전자산업을 일으킨 '한강의 신화'도 이뤄지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청암의 철강신화를 가능케 했던 것은 무엇보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강한 근성이었다. 그는 포항제철소 건설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식민지 배상금은 조상의 피의 대가이므로 제철소가 실패하면 책임자 몇 사람의 문책으로 끝나지 않고 역사에 죄를 짓는 만큼 우리 모두 우향우해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정도로 비장했다. 이처럼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큰 일을 한 청암이지만 정작 유족에게 남긴 재산은 한푼도 없었다. 청암은 노후에 자신 명의의 10억원짜리 집마저 공익재단에 기부해 마지막 치료조차 병원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청빈했고 그래서 그의 업적은 더욱 빛났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진정한 영웅이 없다, 혹은 우린 왜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데, 이는 청암의 빛나는 업적과 청빈한 삶을 알지 못한 까닭이 아닌가 한다. 사실 청암의 진가는 일본과 중국에서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는데 우리만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청암과 중국 최고 실력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의 다음 일화는 박태준의 커다람을 잘 말해준다. 덩샤오핑이 1978년 8월 신일본제철을 방문해 "중국에도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말하자 이나마야 요시히로 회장은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으면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는 지을 수 없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한동안 중국에서는 박태준 연구 열풍이 불었다. 잡스에 비해서도 청암은 결코 업적과 사람됨에서 뒤지는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걸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청암의 빈소를 찾았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잡스가 정보기술(IT) 업계에 남긴 영향이나 공헌도보다 박 회장이 우리나라의 산업과 사회에 남겨주신 좋은 이상과 공적이 몇 배 더 크지 않나 생각한다"며 고인을 기렸다지만, 얼마 전 잡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추모열기에 비하면 청암에 대한 반응은 좀 무심한 측면이 있다. 물론 청암의 삶이라고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정치권에 입문해 오욕을 겪은 것을 두고는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그래도 청암이 일군 철강신화에 대한 업적과 평생을 한결같이 실천해온 청빈한 삶의 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청암이 정치권에서 보인 과(過)가 설령 있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남긴 공(功)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매킨토시 컴퓨터와 아이폰ㆍ아이패드 등 걸작을 남긴 잡스도 과오가 적지 않았다. 포악한 성격과 독재자 같은 조직운영으로 잡스에게는 적도 많았다. 애플의 수석 에반젤리스트였던 가이 가와사키는 "스티브는 '나쁜 놈(asshole)'도 쓸모가 있다는 걸 증명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서 잡스는 죽어서도 영웅으로 남았다. 청암을 보내며 다시 드는 생각은 청암과 같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들이 이제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화 1세대도 개발연대 과정에서 드러난 적지 않은 잘못들이 있지만 그들의 공 역시 청암이 그렇듯 과에 비해 크다. 더욱이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지난 과거가 아니라 우리 후손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다. 청암에 대한 바른 재평가가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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