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또래 남자들을 앞지르는 '알파걸'이 최근 화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현재 우리나라 알파걸의 선배들이 '여필종부'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도 이미 존재했다. 저자는 흉년에 평생 모은 천금으로 제주 백성 천 명을 살린 김만덕, 천주교 전파의 일등공신인 강완숙 등 9명의 조선 여인의 삶을 책에 담았다. 역사를 전공한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각종 사료마다 조금씩 다른 인물 기록에 대해 나름의 통찰력으로 적절한 평가를 내린다. 김만덕의 경우 사료마다 그녀의 신분이 다르게 표현됐다. '정조실록'에는 '제주 기생'으로 기록돼 있으나 체제공의 '번암집'에는 '양인'으로 나와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료를 모두 인용하며 사료의 객관성과 정확성에 비춰 기생신분이 맞았을 것이라 판단한다. 시대배경을 설명하며 인물의 생애를 이해하기 쉽도록 한 점도 책의 매력. 책의 서두에는 18ㆍ19 세기의 시대개관을 다뤘다. 당대 사회상을 이해하면 이들 여인들의 업적은 남다르게 느껴진다. 1794년 계속된 흉년으로 피폐해진 제주도에 태풍이 들이닥쳤다. 조정의 구원물자를 실은 배마저 풍랑으로 침몰했다. 어려운 상황에 제주 여인 김만덕은 쌀 450석을 관에 보내 굶주린 백성을 구했다. 저자는 "한국의 젊은 여자들에게 닮고 싶은 모델상을 제시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말했다.저자의 말을 곱씹어 보면 창작 동기는 분명히 이해된다. 우리에게 알려진 조선시대 여인은 신사임당, 허난설헌 등 10명이 채 안 된다. 그 이유는 이미 알려진 유명 인물을 재해석하는 시도가 많았을 뿐, 시대에 감춰졌던 인물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9명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을 다룬 이 책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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