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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지방은행 중 총자산 규모가 '아래서 두 번째'인 전북은행이 지주사 전환 의사를 밝혔다. 전북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하면 국내은행 중 순수은행으로 남는 곳은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단 두 곳뿐이다. 총자산이 11조원에 불과한 전북은행이 총자산 규모가 10배가 넘는 기업은행에 앞서 지주사로 전환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국내에 지주사 체제가 도입된 해는 2001년. 벌써 이 체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국내 금융산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양면적이다. 밝은 면부터 보자면 지주사 체제는 새로운 금융산업의 플랫폼을 제시했다. 규모에 상관없이 너도나도 지주사로 전환하고 정부의 금융정책 역시 지주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융지주 체제 안에는 국내 금융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오롯이 드러난다. 이 제도가 도입될 당시의 취지는 찾기 어렵고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만 덩그러니 남았다. 은행으로 편중된 자산포트폴리오, 금리 의존형 이익구조, 더딘 해외 진출 등이 대표적이다. 쉽게 말해 산업의 균형이 무너졌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지주사 체제는 산업의 발전적 모색보다는 구조조정을 수월하게 끝마치기 위해 섣불리 도입된 경향이 짙다"며 "정부 제도가 시장에 앞서 변화를 이끌려고 하면 반드시 부작용을 낳게 되는데 금융지주 체제를 보면 딱 그렇다"고 지적했다.
◇10년간의 성장코드, 대형화ㆍ겸업화 언제까지=국내 금융지주사 체제 안에는 지난 10년 동안 국내 금융산업이 추구했던 성장 키워드가 담겨 있다. 바로 대형화와 겸업화다. 금융지주사 체제는 대형화ㆍ겸업화를 통해 효율성 및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됐다. 결과는 어땠을까. 결론을 내기에 조급한 측면이 있지만 대형화ㆍ겸업화는 '반쪽'에 불과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금융산업의 총자산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64.5%에 달한다. 이를 금융지주에 한정하면 수치는 86.1%로 올라간다. '금융산업의 대형화는 은행의 대형화'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지주 중 가장 포트폴리오가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았던 신한지주만 해도 올 들어 은행 비중이 더 늘었다.
금융산업 내 세부업종 간 밸런스가 무너진 상황에서 효율적인 겸업이 나타나기는 어렵다. 도입 여부만 놓고 말이 많은 매트릭스 제도만 해도 여전히 삐걱댄다.
◇이익구조도 언밸런스=상위단계에서의 불균형은 하위단계로 전이됐다. 국내 금융산업의 고질병으로 지적돼온 이익구조 편중 현상이다. 당장 은행 전체 이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착화되고 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올 9월 말 현재 국내 6대 은행의 총이익 중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78.6%로 전년 동기(79.9%)와 별 차이가 없다. 반면 변동성이 적은 수수료 이익이 총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국내 금융사가 자초한 면이 크다. 국내 은행은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자금에 대한 초과 수요를 배경으로 영업활동을 해왔다. 특별한 악재가 없는 한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대출성장률이 가능했다. 경험적인 무사안일주의가 관성의 법칙을 만나면서 변화에 무뎌졌던 것이다.
내수 편중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10년간 일부 금융지주사가 이머징마켓을 중심으로 해외로 나가고 있지만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에 국한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국내 금융사가 빅딜을 해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노진호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은행은 해외 진출이나 투자확대, 유동화 등으로 대출자산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를 개선해야 한다"며 "당국 역시 은행의 겸영범위나 유가증권 운용 규모 등에 관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ㆍ이익구조의 밸런스를 찾아라=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산업은 선진국이 실행해온 금융관행을 거의 수입해 적용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지주사 체제를 기반으로 매트릭스 조직체계를 운영해봤고 수수료 수익을 늘리기 위해 보험과 펀드 판매에 매달려 봤다. 신용카드는 독립법인으로 분사시켜 영업 활성화를 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제도 도입 초기에만 반짝 성과가 있었을 뿐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사례는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마린머니가 집계한 올 1ㆍ4분기 선박금융 리그테이블(신디케이트론 기준)에 따르면 상위 10개 금융사 가운데 아시아계 금융사 네 곳이 포진됐다. 눈에 띄는 것은 미즈호ㆍ스미토모미쓰이ㆍ일본정책투자은행 등 일본계 금융사 세 곳이 나란히 4~6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일본의 장기침체는 은행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고 은행은 침체된 내수시장을 벗어나 글로벌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일본 은행의 해외 대출 예대마진은 국내 대출보다 평균 0.3%포인트 이상 높은데 이는 이익구조가 편중돼 있는 국내 금융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국내 금융산업의 성장기반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금융사가 탄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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