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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외환위기 한국에도 닥치나/허약한 경제… 곳곳 태풍영향권에
입력1997-10-25 00:00:00
수정
1997.10.25 00:00:00
고진갑 기자
홍콩이 지난 23일부터 외환위기상황에 빠져들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거리고 있다.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이 자금시장까지 뒤흔들면서 한반도가 동남아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섰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24일 금융시장 상황과 재경원 입장을 살펴본다.◎증권시장/‘아시아 비중 줄인다’ 외국인 무차별 매도/자생기반 붕괴우려도
기아사태 해결로 회복조짐을 보이던 증시가 동남아 통화위기와 주가폭락으로 비상이 걸렸다.
태국, 말레이시아에 이어 홍콩, 대만으로 통화위기가 확산되면서 이들 국가의 증시가 폭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증시에 투자한 외국인들도 「아시아투자비중을 줄인다」는 대전제에 따라 한전, 포철등 대형 우량주들을 무차별 매도하고 있다.
사실 홍콩 등 동남아 증시와 국내 증시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는 미미하다. 문제는 대형 투자펀드들이 동남아 각국에 투자할 때 일정 비율로 나눠 투자하기 때문에 아시아 투자비중을 줄인다면 한국 투자비중도 따라서 줄어든다는 것이다. 동남아 투자펀드들은 홍콩에 56%정도를 투자하고 기타 국가에는 3∼7%를 투자한다. 한국에는 전체 투자자금의 4∼5%정도를 투자하고 있다.
이들 펀드는 3·4분기에만 무려 16.22%의 손실을 입었다. 동남아 금융불안으로 막대한 환차손을 입었고 주가도 폭락했기 때문이다.
5월 현재 아시아 투자펀드수는 1백32개였으나 현재는 95개로 줄었다. 동남아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증거다. 남아있는 펀드들도 주식을 팔아 현금화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달 들어서만 5천3백억원의 주식을 팔았다.
현재 외국인들이 보유한 국내 주식의 시가총액은 14조원, 전체 시가총액의 12%정도다. 아시아투자비중을 단 1%만 줄여도 1천4백억원의 매물이 쏟아진다는 계산이다. 외국인들은 왜 아시아시장을 떠나는가. 아시아 경제를 불신하기 때문이다. 동남아 각국의 화폐가치가 경제력에 비해 고평가됐다고 판단한 국제 환투기 자금들은 해당 국가의 환율을 뒤흔들고 있다.
한국 외환시장 체계가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다르기 때문에 급격한 환율변동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시아 시장을 바라보는 외국 펀드의 입장에서는 한국 증시 역시 매도 대상의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정명수 기자>
◎외환시장/안팎 거센 상승압력/마지노선 계속 후퇴/외환 보유마저 격감
동남아 태풍이 외환시장을 출렁이게 만들면서 원화환율이 달러당 9백30원까지 치솟았다.
당초 연말환율 전망을 내놓으며 「높으면 9백30원」정도로 봤던 외환관계자들은 이런 환율폭등현상에 대해 예측능력이 모자라는 자신을 탓하기보다 누구도 예상치못했던 외부환경변화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24일 외환시장에서 대미달러환율은 기준환율보다 5원 높은 달러당 9백24원에 개장된 뒤 급등세를 타기 시작, 상오장에서 이미 9백29원80전까지 상승하며 9백30원선 돌파를 시도했다. 하오장에서는 한때 9백30원을 기록한 후 9백29원50전으로 마감했다. 이제 외환당국은 지난 20일 9백15원선에서 힘없이 물러선 이후 불과 5일만에 어느덧 9백30원을 마지노선으로 삼는 형편이 됐다.
사실 『9백25원이든 9백30원이든 큰 의미는 없다』는 게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문제는 이처럼 외환당국이 환율저지선을 계속 후퇴하는 상황에 있다는 얘기다.
외환당국은 『동경이나 홍콩의 주가동향을 볼 때 환율상승은 불가피하다』며 대세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팎의 거센 환율상승압력을 무시하고 9백20원이니 9백25원이니 하는 상징적 저지선만 붙들고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외환시장 일각에선 외환보유액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지난9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백4억3천만달러. 지난 7월말의 3백37억달러에서 불과 두달만에 33억7천만달러나 줄어든 수준인데 이같은 감소세는 10월들어 더 빨라졌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당국이 급격히 감소하는 외환보유액을 염려, 외환시장 개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9백30원선도 안심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25, 26일 이틀간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열릴 27일 외환시장에 관심이 쏠리고있다.<손동영 기자>
◎자금시장/한은 유동성 3조 공급불구/달러 사재기로 돈사정 ‘빡빡’
동남아 및 홍콩 외환위기의 여파가 국내 외환 및 주식시장을 강타하면서 자금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4조원 가량에 달하는 부가세 납부용 자금수요에 대비, 한국은행이 지난 23일 시중은행,종금,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RP(환매국공채 매매)조작을 통해 3조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자금시장 참여자들은 오히려 환율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은의 신축적인 통화관리만으로는 자금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에 역부족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만 해도 이정도 규모의 RP지원은 곧 바로 단기금리의 안정으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한 원화 딜러는 『자금시장이 개장한 후 한 금융기관에 전화를 해 자금사정을 문의해봤더니 달러화를 사고 나서 여유자금이 없다고 말했다』며 외환시장의 불안정이 바로 자금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딜러는 『동남아와 홍콩 등의 외환위기가 국내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외환당국이 마지막까지 환율을 방어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팽배하다』면서 『결국 이는 자금시장에도 악재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금시장 관계자는 『최근들어 개인투기세력들마저 외환선물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향후 자금사정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도 부가세 납부 등의 월말 자금수요로 자금사정이 빡빡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외환시장의 불안으로 당분간 자금시장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 같다는게 자금시장 주변의 우려섞인 분석이다.<김상석 기자>
◎정부입장/‘한국경제 동남아와 다르다’/외자유입 촉진 등 대비책 분주
재정경제원은 동남아 외환위기에 따른 국내 외환시장 동요와 주가폭락 사태를 맞아 일단 우리 경제는 동남아국가들과 다르다고 강조하면서도 외자유입 확대방안등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
재경원은 ▲채권시장 미개방 등으로 동남아 통화위기를 촉발한 투기적인 헤지펀드가 국내에 거의 들어와 있지않고 ▲사실상 고정환율을 유지해온 홍콩 등 동남아국가들과 달리 원화는 그동안 꾸준히 절하돼온 점을 들어 우리나라가 동남아국가와 함께 도매금으로 외환위기에 봉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 따라서 한국경제와 동남아경제와의 차별성을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충실히 설명, 도매금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데 주력하고있다.
그러나 재경원은 외국인투자가의 증시이탈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외환수급계획을 재점검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상황이다.
우선 환율안정에 총력을 기울여 외국자본이 원화환율절하를 우려, 외국자본이 국내증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입장.
재경원관계자는 『사실상 달러에 환율을 고정시켜온 홍콩, 대만, 태국 등과는 달리 원화는 20%가까이 절하되는 등 그동안 꾸준히 시장상황을 반영해 급격한 절하요인이 없다』면서 『국내경제에 대한 불안감 등 심리적 요인에 따른 환율동요를 차단하겠다』고 강조.
재경원 일각에서는 한편 근본적으로 기업들의 연쇄부도와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우리 경제에 대한 의구심을 조장해 온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아해법제시에 이어 금융기관의 구조조정문제에도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하고 있다.<최창환 기자>
◎재계입장/수출환경 한치앞 불투명/환차손도 눈덩이… 초비상
『주력 수출시장인 동남아가 흔들리고 환차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출을 포함한 경영환경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
종합상사를 비롯해 주요 수출업체, 항공,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기업들이 원화가치 하락, 주가하락에 동남아 통화위기까지 겹치는 3중고 속에 수출확대, 환차손 극소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설비도입이나 해외투자로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차손으로 앉아서 손해를 보고 있다.
업계가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환율상승이 수출확대로 이어진다는 이론이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내 총수출의 15%를 차지하고 있는 동남아 지역의 통화위기로 이들 국가의 대부분이 구매력을 상실하면서 수출이 위축되고 있다. 더구나 경쟁국인 일본의 엔화가치 하락도 원화환율 상승에 따른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삼성물산의 한 관계자는 『우리의 주력 수출시장인 동남아 국가와 일본의 통화가치가 동반하락해 원화가치 하락이 지속된다 해도 수출확대 효과를 별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차손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지역에 투자한 기업들과 외화차입금이 많거나 원유, 설비 등 원자재를 수입하는 석유화학, 기계업종이나 항공업종은 갈수록 불어나는 환차손으로 어려움이 더욱 크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선물환매입 또는 스와프거래를 통해 환리스크를 줄이는데 주력하고 있으나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진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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