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30일 서울 여의도공원. 임영록 KB금융그룹 회장, 이건호 KB국민은행장부터 일선 직원까지 1,100여명의 KB 식구가 한 데 모였다. 연말을 맞아 준비한 김장나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김장 봉사를 위해 장사진을 친 KB 식구들을 일일이 찾아가 격려했다. 두 수장을 한 시간 가량 쫓아 다녔다.
옆에서 지켜보니 느껴지는 게 있었다. 행장이 회장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다는 것. 행사장을 돌 때 둘은 나란히 걷지 않았다. 회장이 항상 앞섰다.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회장 권위가 행장보다 높으니 저러겠거니 생각했다.
비리·횡령부터 정보 유출 등 불미스러운 사고가 연이어 벌어지자 KB는 4월18일 ‘심야 끝장 토론’을 진행했다. 당시 행사가 열린 일산 연수원을 찾았다. “줄대기 인사를 없애자”같은 솔직한 얘기들이 오갔다. 좋은 행사 취지였다.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뒷이야기를 듣자 씁쓸했다. 이 행장은 이날 다른 일정 때문에 다소 늦었다. 무슨 이유인지 행사장 구석 자리에 배정됐다. 둘 간의 위계가 있다 쳐도 이렇게까지 무시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제1계열사 대표다. 지각생에 대한 차별이라고 하기에는 모양새가 안 좋았다.
결국 사달이 났다. 두 사람은 8월22일 가평 백련사에 모였다. 1박2일 일정의 템플스테이를 통해 그간의 아픔을 딛고 화합하자는 취지였다. 한 방에서 묵는 일정도 그 일환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자려고 했단다. 그러다 문득 회장에 독방이 배정됐다. 취지에 맞지 않았다. 행장은 참석자들과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중도 하차했다.
화합 아닌 분열의 장으로 변했다. 가평을 찾았던 나도 힘이 빠졌다. 시쳇말로 둘 다 ‘없어’ 보이지 않나. 회장은 예우가, 행장은 예의가. 그럼에도 일련의 사건들을 돌이켜보자.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회장이 행장을 예의 없게 만들었다. 템플스테이에서 한 스님은 ‘하심(下心)’을 강조했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한 사람은 마음을 내려 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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