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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웅 휴먼칼럼]굴신이 자유로운 사람들
입력1998-12-16 00:00:00
수정
1998.12.16 00:00:00
두 인물을 소개한다. 한 사람은 옥스퍼드 대학을 수석 졸업후 스탠퍼드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다 세계적인 미국 영화사 워너 브러더스 사장직에 오른 인물로 하루에 15시간 일에 매달려 온 일 중독자이다.성공의 정점에 서 있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황야로 나가 험한 바람을 쐬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던진다. 당시 그의 나이 쉰.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런 날이 오지않기 때문』이라는 짧은 사직이유를 남긴채.
다른 한 사람은 고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머리좋은 친구에게 관심을 보이자 그날 이후 공부에 매달려 남들보다 두살 빠른 열 여섯살에 예일대학에 들어간 투지의 사나이다. 텍사스에서 석유회사를 경영하면서도 쉰이 넘은 나이에 대규모 스키 리조트 사업에 새로이 도전하는 정열을 보이고 있다. 그 역시 바람부는 황야를 택한다. 『인간은 쉬운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싸움에 패배하면서 비로소 성장한다』는 평소의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그런 두 사람이 우연히 회동하는 것으로 논픽션 「7대륙 초고봉(SEVEN SUMMITS)」은 첫장을 연다. 그리고 나서 세계 7대륙의 최고봉인 남미의 아퉁카과, 아시아 대륙의 에베레스트, 북미의 메킨리,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유럽의 엘부르스, 남극의 빈슨, 오스트레일리아의 코지어스코어가 3년안에 두 사람한테 차례로 정복당하는 로망이 모험극으로 펼쳐진다.
둘은 전문 산악인이 아니다. 나이도 천명(天命)을 알 때인 50줄이다. 거기에 잃어버릴 것 하나없는 인생의 성공자들로 억만장자인 대기업의 현역 사장들이다. 무엇이 그들을 밖으로 불러냈는가. 최근 「불가능한 꿈은 없다」는 이름으로 국내 출판된 이 책에서 역자 황정일씨(뉴스위크 코리아 편집위원)는 후기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도전이 단순한 정상(頂上)도전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공통되는 영웅의 이야기이고, 그리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산에 대한 도전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밤새워 이 책을 통독하면 두 주인공이 「굴신(屈伸)이 자유로웠던 사람들」임을 느낀다. 으레 바깥 아니면 한쪽에 치우쳐 살게 마련인 인생을 두 주인공은 바깥 세계의 승부를 대충 마감후 안쪽 세계로 과감히 뛰어든 것이다. 미국의 거부이자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로스 페로가 두 사람의 거취를 놓고 『그들이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고 밝힌 것 역시 같은 취지에서다. 정반대의 경우도 눈여겨 살펴볼만 하다. 항상 우울하고 고독했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소위가 바깥 세계로 탈출하는 대목을 전기작가 빈센트 크로닌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787년 추운 11월, 파리의 팔레 롸얄. 나폴레옹 소위가 길거리에 나온 어린 창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말을 건다. 『감기 걸리겠오. 이 추운 날씨에』『손님을 기다려요』창녀가 무관심하게 대꾸한다. 창녀의 무관심이 오히려 무겁게 들렸다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일기장에 기술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그때까지 자신에게 군인보다는 작가적인 재능이 더 다분한 것으로 믿어왔다. 여인을 따라 걸으며 나폴레옹은 계속해서 말을 건다.
『당신 이 직업말고 다른 일을 벌일 수도 있잖소』
『안돼요. 당장 먹고 살아야 하거든요』
『첫 남자는 누구였오』
『(당신같은)장교였어요』
『당신 지금 화나있오. 파리는 어떻게 왔오』
『첫 남자가 날 떠난후 두번째 장교를 따라 파리에 왔어요. 그 두번째 장교도 날 버렸고 지금은 세번째 장교와 만나 3년째 살고 있어요. 그는 지금 런던에 근무중입니다. 당신 숙소로 같이가요』
『거긴 가서 뭘하게』
『우선 몸을 녹일 수가 있고 당신을 즐겁게 해 드릴 수가 있잖아요』
기록에 의하면 이 여인이 나폴레옹에게 안긴 첫 여인이다. 그러나 다시 그여인을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나폴레옹은 2년 뒤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 대목을 작가 크로닌은 그때까지 자폐증 환자였던 나폴레옹이 바깥 세계에 시도한 첫 앙가쥬망(개입)으로 묘사하고 있다. 두 50대 영웅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처럼 나폴레옹은 문을 열고 나간 것이다. 굴신에 능한자가 강자다. /김승웅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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