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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주>/이상수 국회의원(로터리)
입력1996-12-14 00:00:00
수정
1996.12.14 00:00:00
이상수 기자
생 텍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술꾼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왕자가 술병 한무더기를 앞에 놓고 앉아 있는 술꾼에게 물었다.『왜 술을 마셔요?』
『잊어 버리려고.』 술꾼이 대답했다.
『무얼 잊어버리려고요?』 술꾼이 측은해져서 어린왕자가 다시 물었다.
『부끄럽다는 걸 잊어버리려고.』 고개를 숙이며 술꾼이 털어 놓았다.
『무엇이 부끄러운데요?』 그를 도와주려고 어린왕자가 물었다.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럽지!』 그 말을 마치고 술꾼은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얼른 들으면 순환 논법식의 대답으로 무의미한 우스갯 소리 같지만 그 속에는 깊은 진실이 담겨있다. 술은 어떤 이유가 있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습관에 따라 마신다는 것이다.
사실 기뻐서 한 잔, 슬퍼서 한 잔 하면서 이유를 붙여 술을 마시지만 결국 따져보면 우리 스스로가 이유를 만들어 술을 마시는 지도 모르겠다.
요즘 망년회다, 송년회다 하여 술자리를 갖는 기회가 많다. 자리를 함께하다 보면 취흥이 무르익어 폭음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젊었을 때와 달라 이제 과음을 하면 다음날 곧 일에 지장이 오는 것 같다.
나도 본시 술 한 잔 하자고 권하면 사양하지 않는 이른바 「두주불사」형에 속한다. 그리고 술을 권하면 정직하게 다 받아 마시는 편이어서 더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것 같다. 선친께서는 술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았는지 술마시는 원칙까지 정해주면서 술을 조심하라고 당부했었다.
「자주는 금주하고 타주는 절주하라」는 원칙이 그것이다. 자기 스스로 건수를 만들어 술을 마시는 것은 금하고 어쩔 수 없이 남이 만들어 주는 술자리에 가더라도 술을 절제해 마시라는 「가훈」아닌 「가훈」으로 내려오고 있다.
술마시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 굳이 따진다면 술맛은 마시는 사람의 기분, 상대방, 술 마시는 곳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겠다. 이 세가지가 맞아 떨어질 때 멋있고 흥있는 술판이 벌어지게 된다.
그런데 본시 멋의 본질은 여유에 있다고 하겠다. 술을 마시면서도 격식을 지키고 그 격식을 지키면서도 파격의 세계를 넘나드는 절제된 여유와 넉넉함이 술자리를 진정으로 멋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폭탄주를 돌려 물리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게 하여 취흥을 돋우는 것은 하수들의 방법이다. 조용한 대화속에 한 해를 돌이켜보며 인생의 참뜻을 새겨보는 자리, 친구의 청아한 목소리를 통해 귀에 익은 가곡이라도 한 곡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기분, 이런 술자리가 진정 멋있고 운치있는 술자리가 아닐까. 「주석이 길면 생명은 짧다」는 속담이 있듯이 2차, 3차로 곤드레 만드레 되어 귀가하는 것보다 적당히 취해 기분좋은 상태에서 모처럼 아내와 다정한 대화라도 나누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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