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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핵가족의 자화상

■ [영화 리뷰] 좋지 아니한가<br>풍파 겪으며 서로 가까워 지지만 여전히 서로 무관심한 가족 모습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듯한 영화 '좋지 아니한가' 는 섹시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김혜수가 놀라운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엄청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50억 인구 중 단 몇 명의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로 묶여 있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우리 삶에서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당연히 항상 곁에 있는 사람들로만 생각할 뿐. ‘좋지 아니한가’는 한 가족의 부침을 통해 관객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 의의에 질문한다. 그리고는 함께 생각해보기를 권하는 영화다. 영화 속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이 등장한다. 가장에 걸맞은 권위를 가정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보수적이고 무뚝뚝한 아버지(천호진), 악착같이 살림을 하며 살아왔지만 폐경기에 이르러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어머니(문희경), 원조교제를 하는 문제 소녀를 짝사랑하는 아들(유아인), 세상 모든 것이 궁금증 투성이인 딸(황보라), 그리고 별다른 인생의 목표도 없이 언니 집에 얹혀 살아가며 시간만 보내는 노처녀 무협작가 이모(김혜수)가 그들. 서로 관심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대화도 없는 이 가족은 아침에 모여 함께 밥 먹고, 저녁에 한 집으로 귀가할 뿐 각자의 일상에 파묻혀 제각기 자신들만의 우주에 빠져 산다. 이런 가정에 어느날 풍파가 일어난다. 아버지가 길에 쓰러진 여고생을 구해주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 원조교제 추문에 휘말리게 된 것. 졸지에 원조교제 교사와 그의 가족으로 ‘찍혀버린’ 이 가족은 세상과 대립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영화는 무심한 척 이 가족을 기괴하게 포장하지만 사실 이들은 우리 현실 속 가족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권위를 잃은 고개 숙인 아버지, 억척스럽게 삶을 살다가 마침내 회의에 빠진 어머니, 가족에게 큰 애정이 없는, 그래서 ‘왜 함상 저녁이면 정해진 집에 들어와야 하는지, 옆집에 들어가면 안 되는지’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남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들의 모습은 비록 조금 과장은 돼 있을지 몰라도 엄연한 핵가족 시대 우리 사회 가족들의 캐리커쳐다. 감독은 이 가족을 작은 풍랑 속에 밀어넣어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정윤철 감독은 끝끝내 이들을 화목한 가족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온갖 사건을 겪으면서 이 무심한 가족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지만, 그렇다고 대부분 가족영화의 결말처럼 화목하고 살갑게 되지는 않는 것. 영화가 끝날 때가 돼도 이들은 여전히 무뚝뚝하고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다. 대신 이들은 이제 가족이라는 존재가 달과 지구처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지만 항상 곁에 있는 존재. 가족은 무조건 가까운 것이라는 핏줄의식에 익숙한 우리 관객에게 감독의 이 같은 가족관은 엉뚱하면서도 한편으론 신선하게 느껴진다. 섬세한 관찰로 만들어진 생동감있는 캐릭터와 이를 성실하게 연기하는 중견배우들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다. ‘말죽거리 잔혹사’등에서 우리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준 바 있었던 천호진, 뮤지컬 배우로 잔뼈가 굵은 문희경이 연기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은 큰 과장이 느껴지지 않는 생활의 느낌이 묻어나는 연기다. 부시시한 머리의 반백수로 분한 김혜수의 깜짝 변신도 놀랍다. 이들과 젊은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로 인해 영화는 마치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 잔재미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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