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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지 부담스런 고공행진] 원고 속 27개월째 흑자… '채산성 악화' 수출기업 해외로 나갈 판

달러 밀려오는데 내수 부진으로 불균형 심화

"불황형 흑자" 지적에 한은선 "선진국형 회복"

원화강세 지속 땐 日 장기불황 전철 밟을수도

원ㆍ달러 환율이 연저점을 갈아치운 27일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분주히 업무를 보고 있다. /권욱기자


원·달러 환율이 다시 가파른 하락세로 돌아선 가운데 경상수지 흑자가 부담스러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누적 경상흑자는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보다 27%나 증가했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기록이 깨질 공산이 크다.

'달러벌이'가 잘 된다는 뜻인 국제수지 지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은 수출과 내수 간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특히 내수부진을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빠른 속도로 밀려 들어오는 달러는 오히려 한국 경제에 부담을 가중한다. 당장 경상수지 통계가 나온 27일 원·달러 환율은 연저점을 갈아치우며 1,013원대까지 급락했다.

◇외환위기 이후 최장 흑자 행진=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5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5월 경상수지는 93억달러 흑자로 27개월째 흑자를 이어갔다. 이는 외환위기였던 1997년 11월부터 1999년 12월까지의 26개월을 넘어선 것으로 흑자 기간으로는 역대 두 번째다. 최장기간은 1986년 6월부터 1989년 7월(38개월)이다.

5월 경상수지 흑자는 전월 대비 21억8,000만달러(30.6%) 늘었고 전년 대비로는 4억5,000만달러(4.6%) 줄었다. 1~5월 누적 경상흑자는 315억달러로 한은의 올해 전망치(680억달러)의 46.3%를 채웠다. 정준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지난해 부진했던 선박·석유제품의 수출이 개선됐기 때문"이라며 "당분간 이런 흑자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경상수지 가운데 상품 수출입에 따른 상품수지 흑자는 93억5,000만달러로 4월(106억5,000만달러)보다 소폭 줄었다. 수출은 526억1,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8% 감소했고 수입은 432억6,000만달러로 1.6% 쪼그라들었다. 전월 대비로는 각각 7.2%, 6% 하락했다.

이 때문에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줄어드는 '불황형 흑자'를 닮아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입감소도 문제지만 1~5월 수출 증가율이 3%대에 불과한 것도 문제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수출이 별로 안 늘어나는데 수입이 줄어들면서 흑자가 난다는 의미에서 보면 불황형 흑자에 가깝다"며 "과거 불황형 흑자로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과 방향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불황형 흑자로 엔고가 가속화하면서 결국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 빠졌다. 우리나라 역시 원화강세에 따라 수입이 늘어야 하는데 내수침체로 수입물량이 늘지 않는 상태다.

이에 대해 한은은 정면 반박했다. 정 부장은 "5월에는 영업일수 감소로 수출이 줄었지만 일 평균으로는 증가세가 유지됐다"며 "일부 내수부진이나 해외경제 활동이 반영되기는 했지만 불황형 흑자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선진국형 회복"이라고 주장했다.

◇수출채산성 악화한 기업들, 해외투자 가속=일본은 엔화강세에 수출업체가 고전하자 인위적인 내수부양으로 대응했다가 되레 자산 버블이 생기면서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역시 수출과 내수의 심각한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원화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수출업체의 채산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토지비가 비싸고 노동경직성이 높아 가뜩이나 투자가 쉽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원화까지 빠르게 절상되면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 외환시장에서도 경상흑자에 따른 부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2원80전 내린 1,013원40전으로 마감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7월31일(1,012원20전) 이후 5년11개월 만에 최저치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경상수지 흑자가 앞으로 환율에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며 "점심시간에 달러당 1,014원10전에서 게걸음 장세를 보이고 장 후반 50전 정도 올린 것으로 보이지만 이 밖에 당국의 뚜렷한 개입이라고 할 만한 물량은 없었다"고 말했다.

원화강세로 수출기업이 떠안는 부담을 내수가 커버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구조적인 내수부진은 쉽게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고령화 등으로 소비탄력은 떨어지고 기업들은 국내 투자를 기피한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내수부진이 구조적 현상이라는 게 더 문제"라며 "원화가치가 더 상승한다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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