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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대가 넘는 갈비선물세트는 아예 없어요.” 올해로 5년째 택배 배송업무를 하고 있는 동부익스프레스의 허선웅(32)씨. 5일 아침부터 바쁜 걸음을 재촉해 고객에게 추석선물을 전달한 허씨의 택배차량 안에 빼곡히 쌓인 180여개 상품 중에는 고급 굴비세트는 물론 일반 갈비세트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포장재와 용량ㆍ크기가 모두 줄어든 5만~6만원대의 저가 굴비세트와 고추ㆍ쌀 같은 농산물들이 주를 이뤘다. 또 부피는 크지만 무게가 가벼운 멸치ㆍ김 등의 값싼 수산물들이 투박한 종이상자에 담겨 있었다. 명절 단골 선물세트 중 하나인 생활용품세트도 특대형은 찾아볼 수 없고 가격대가 1만~2만원인 기본형이 대부분이었다. “올 추석선물은 다른 해보다 무게가 가벼워 일하기는 편한데 마음은 무겁다”는 허씨의 말에는 경기불황의 그늘이 짙게 묻어난다. “사실 선물 포장상태만 봐도 경기를 알 수 있어요. 경기가 좋을 때는 한우갈비나 굴비 같은 고가 선물세트가 많다 보니 포장부터 고급스럽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투박한 종이포장이 많을 수밖에 없거든요” 연중 택배물량이 가장 많이 몰리는 추석대목을 맞아 지난 4일과 5일 이틀간 둘러본 선물배송 현장에서는 최근의 경기상황을 체감할 수 있었다. 4일 밤11시 동부익스프레스의 전국 택배물량이 집결되는 대전종합터미널에서는 180여명의 직원들이 한낮의 여느 공장보다 더 바쁜 손놀림으로 분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낮 시간의 교통체증을 피해 새벽에 전국 33개 지점으로 물량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상품분류 작업은 보통 밤9시부터 새벽까지 이뤄진다. 안병진(42) 대전터미널 소장도 “몇 년 전만 해도 자주 볼 수 있었던 비단 천으로 정성스레 포장한 한우갈비세트나 과일선물세트가 올해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고 허씨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동부익스프레스 강북2택배지점에서 만난 허씨의 동료 택배기사 박모(45)씨는 “과거 추석 선물세트의 경우 가격대가 높은 제품이 많아 취급하는 데 어려움이 컸지만 올해에는 고가 선물세트가 사라져 오히려 부담은 줄었다”면서 “하지만 경기가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결코 좋아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특히 경기불황으로 배송비 단가마저 떨어져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개인고객들이 배송비 추가 인하를 요구하면서 경쟁이 치열한 택배업체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배송비를 깎아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추석 때만 해도 1만원에 육박하던 고추 한 포대(5㎏)의 배송비는 현재 딱 절반 수준인 5,000원으로 떨어졌다. 금필환 강북2택배지점장은 “사실상 5,000원이 마지노선인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 내년 설에는 어떻게 해야 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도 거른 채 바쁜 걸음을 내딛는 허씨는 “내년에는 힘이 더 들더라도 경기가 살아나 선물세트가 좀 더 무겁고 커졌으면 좋겠다”며 또 다른 고객 집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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