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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그후 10년] (7)되풀이 되는 거품성장

벤처기업 신화는 '압축성장' 복사판<br>98년재벌체제 대안으로 집중육성…4년새 28배로<br>고용창출등 성과불구 '무늬만 벤처' 양산이 화근<br>"저성장 늪 탈출위해 재도약 절실" 벤처 다시 주목

불 밝힌 테헤란밸리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지난 99년 11월 17일. 재벌 계열사도 아닌 일개 벤처기업이던 ‘두루넷’이 한국 최초로 나스닥 ‘직상장’이라는 축포를 쏘아 올렸다. 이 회사는 한국경제 부활의 상징으로 대내외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하지만 3년 뒤인 2002년 11월 13일 두루넷은 상장폐지를 통보 받았다.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었던 한국 벤처에 대한 국제 시장의 냉혹한 판단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의 도메인은 ‘코리아닷컴(korea.com)’. 한국의 국가 신인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벤처기업의 신화는 두루넷의 몰락처럼 ‘한여름밤의 꿈’에 불과했을까. ◇재벌 체제의 대안으로 떠오른 벤처= 지난 98년 1월13일 김대중 대통령과 5대 재벌 총수는 ‘대기업 구조개혁 5대 원칙’에 합의했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재벌체제를 지목하고, 대대적인 수술을 계획했다. 그러나 재벌체제를 손 볼 경우, 경제를 이끌어갈 대안세력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대두됐다.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이때 DJ 정부는 90년대 초반부터 미국 경제를 장기호황으로 이끌었던 클린턴 정부의 ‘신경제(New Economy)’를 주목했다. 기술 중심의 벤처 기업이 바로 그 주역이었다. 이후 ‘재벌경제에서 벤처경제로’의 구호 아래 벤처기업은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으며 2000년 버블 붕괴 때까지 한국경제의 미래로 떠올랐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대기업이 수면 밑으로 들어가고 기술 중심의 중소기업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 한국경제의 성장 패러다임 자체가 기존의 재벌 대기업에서 비재벌 중소기업으로 바뀐 셈이었다. ◇압축 성장의 복사판= DJ 정부로서는 경기 활성화와 실업난 해소를 위해 벤처 기업의 자연스런 성장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제조업이 주력인 재벌은 생존 차원에서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실업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미국의 신경제는 휴렛팩커드(HP)를 시작으로 60년간 점진적으로 발전해왔지만 한국으로서는 ‘압축 성장’이 불가피했다. 한국경제의 40년 초고속 압축성장을 견인한 개발시대의 논리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시점에서 ‘벤처 육성’을 위해 재현된 것이었다. 국민의 정부는 임기 동안 벤처기업 2만개 육성, 4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한 각종 벤처 육성책들을 98년 잇따라 발표했다. 정부가 지정한 벤처기업에는 자금 및 인력 조달 등에서 각종 특혜가 제공됐다. ‘퍼주기’에 가까웠던 당시의 정책기조는 단기간에 벤처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99년 5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정덕구 열린우리당 전 의원은 “이헌재씨 등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왜 이렇게 과도한 인센티브를 주느냐’며 강하게 반발했고, 벤처 정책을 둘러싼 격론이 자주 있었다”고 회고했다. ◇머니게임의 후유증= 정부의 인센티브는 곧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정부 공인 벤처기업 수가 98년 5월 304곳에서 2001년 8,798곳으로 28배로 늘어났다. 이 같은 양적 팽창은 곧 고용창출 효과로 이어졌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99년 한 해 동안 벤처기업이 실질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로, 약 18만명의 고용을 창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찬진, 안철수, 전하진, 이재웅, 손정의, 정문술 등 벤처업계의 스타급 CEO들이 출현해 한국의 ‘빌 게이츠’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2000년 하반기 벤처 거품론이 고개를 들고 분식회계, 주가조작, ‘진승현 게이트’ 등 몇몇 대형 비리 사건 등이 터지면서 구조적 한계가 속속 드러났다. 특히 벤처기업의 판별을 시장이 아닌 정부가 맡은 게 결정적 패착이었다. 정부가 제시한 다양한 요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벤처기업으로 등록되다 보니 ‘무늬만 벤처’들이 양산됐던 것이었다. 헌법 전문가인 이석연 변호사는 “정부 지원으로 리스크 부담을 본질로 하는 벤처 정신은 사라지고 기업들은 기술개발이 아닌 특혜를 받기 위한 대정부 로비에 열을 올렸다”고 진단했다. 돈이 넘치면서 ‘묻지마 투자(spray & pray)’가 속출했고 코스닥 시장은 머니 게임장으로 변질됐다. 조현정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강남 술집을 벤처가 다 먹여 살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주가가 급등하니까 고급 승용차로 바꾸고 운전기사를 둔 벤처기업인이 많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거품이 꺼지면서 망했다”고 말했다. ◇다시 주목받는 벤처= 참여정부는 2004년 12월24일 ‘벤처기업 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버블 붕괴 이후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던 벤처기업의 성과를 재평가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헌재 부총리, 한덕수 부총리도 ‘벤처 기업 육성’의 필요성을 수시로 강조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 처방으로 시작됐지만 벤처기업 육성은 한국경제에 적잖은 활력을 불러 넣었다. 벤처기업 수는 지난 2001년 1만1,300개에서 2004년 7,300개로 줄었다가 지금은 1만2,000개까지 늘었다. 옥석도 많이 가려졌다. 벤처기업의 전체 매출액도 3조원에서 13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특히 제조업은 중견기업으로 성장 비율이 0.3%밖에 안 되지만 벤처기업은 2~3%나 된다. 그만큼 성장 잠재력과 역동성이 크다는 얘기다. 또 2005년말 매출 1,000억원 넘긴 벤처 기업은 71개에 달하며, 이들 회사의 전체매출은 13조8,000억원에 이른다. 지난 99~2004년 대기업 고용증가율은 0.3%, 중소기업은 17.3%인 반면 벤처기업은 45.7%로 고용에서도 톡톡히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진정한 ‘벤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벤처의 재도약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마지막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신국환 국민중심당 공동대표는 “당시 벤처정책은 일자리 창출, 기술혁신, 산업저변 확대 등 시의성면에서 대단히 적절했다”며 “다만 모험 사업인 벤처업계가 일시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이를 보완하는 정부의 역할이 부족했던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2000년 전후 시장이 아닌 정부의 장단에 맞춰 움직이면서 벤처 생태계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며 “이제는 벤처캐피탈이 벤처 기업을 적절한 평가, 보상 기능을 수행하는 미국식 벤처 매커니즘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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