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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재계 평행선 달리다 접점찾기 시동
입력2004-05-13 18:15:34
수정
2004.05.13 18:15:34
"금융계열사 의결권 축소 외국인도 걱정해줘"<BR> 주요그룹 핵심재무임원 참석 재벌정책 성토… 의결권범위 재계입장 수용의사
평행선을 걸어오던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가 13일 전격적으로 회동을 가진 것은 ‘만남’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 후 양측이 회동을 갖는 것에 대해 극도로 꺼리는 모습을 연출해왔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날 모임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선고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점에 주목한다. 개정안 마련을 앞두고 당정ㆍ정부부처간의 협의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과정에서 무조건적인 대립 양상이 서로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양측은 여전히 모임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정ㆍ재계가 본격적으로 접점 찾기에 시동을 건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 기업들, 격렬 성토 마당 = 이날 모임에는 4대 그룹을 비롯, 20개에 가까운 주요 그룹의 핵심 재무임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정부 당국자 앞에서 재계 대표들이 이렇게 격렬하게 입장을 표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며 “기업들이 더 이상 체면치레를 할 때가 아니라는 기색이 역력했고 볼멘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각 그룹 대표들은 이날 회동을 자신들의 의중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는 자리로 활용했다. A그룹의 한 임원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15%로 낮추면 경영권 방어장치를 사실상 100%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외국인에게 머니게임을 하기 위한 장소를 펼쳐줄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삼성그룹도 의결권 문제를 집중 부각시켰다. B그룹 임원은 “돈이 흘러 넘치는 판국이고 부채비율도 100% 미만인데 금융계열사의 고객 돈으로 장난을 하는 곳이 있으면 제시해보라”고 정면으로 공박한 뒤 “공정위가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지적했다.
C그룹의 한 관계자도 “SK 사태 때 소버린의 예에서 보듯 외국인들은 단시일 내에 인수합병(M&A)를 끝낼 수 있다”며 “기업을 뺏긴 후 그때 가서 법을 바꿀 작정”이냐고 공격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어떤 이는 “기업들이 엄살을 피우는지 아느냐. 왜 기업을 의심하느냐”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D그룹 임원은 “의결권이 낮아지면 금융계열사를 갖고 있는 기업의 경영권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며 걱정해주는 외국인들도 있다”며 외국인투자가들의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 공정위, 반박논리 속 유연화된 태도 = 이동규 공정위 독점국장은 기업들의 성토에 대해 일단 반박논리를 폈다. 이 국장은 “기업들이 말하는 경영권은 결과적으로 현 오너의 경영권을 보장해주자는 것 아니냐”며 “오너를 보호해주는 게 정부정책의 목표는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오히려 기업들의 M&A를 활성화시켜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해줄 수 있다”며 “정부가 왜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해야 하느냐.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제도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이 국장은 그러나 현재 입법예고된 개정안에 재계 입장을 다소 반영할 뜻을 비춘 것을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한 한 임원은 “공정위가 의결권 행사범위를 축소하는 문제를 한번 더 생각해보겠다는 뜻을 비췄다”며 “조금 더 물러설 것 같은 느낌을 줬다”고 말했다.
◇ 재벌개혁 방향, 이르면 다음주 사실상 결론 = 개정안은 이번주 초까지도 공정위가 내놓은 입법예고안대로 통과될 듯했다.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전 원내대표와 정세균 전 정책위의장이 “개혁의지가 퇴색해서는 안된다”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홍재형 신임 정책위의장이 금융계열사 의결권 문제에 대한 재검토 의지를 밝히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물론 홍 의장은 파문이 확산되자 이날 “전날 당정협의 후 밝힌 ‘재검토’의 의미는 원점부터 검토해 안하겠다는 뜻이 아니다”며 한발짝 물러서 개혁세력의 반발도 감지되지만 여당 내 분위기가 다소 변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 와중에서 공정위와 재계가 만난 것이다.
김석동 재경부 금융정책국장도 이날 “공정위와의 협의가 거의 다 끝났다”며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는 현 분위기를 감안할 때 마지막 현안으로 남은 의결권 문제는 재경부안을 준용, 2~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5% 정도로 축소되는 선에서 최종결론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반년 넘게 끌어온 재벌개혁 방안이 이르면 다음주께 종착역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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