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백모씨(29, 서울 노원구)의 지난 몇 주간은 악몽과도 같았다. 지난 달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라는 미국발 악재로 인해 국내 주식시장이 폭락, 한 때 자신이 사두었던 회사 주식의 주가가 30% 가까이 떨어졌다. 다행히 요즘 어느 정도 주가가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도 수익률은 마이너스 상태여서 하루하루가 불안할 따름이다. 매시간 주가를 확인하느라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입맛도 없어 밥을 제 때 먹지 않은 탓에 소화불량ㆍ위염 증세에 두통까지 겹쳤다. 백씨 처럼 주식에 직접투자했다가 하루하루를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주식중독증(스톡홀릭)이다. 어떻게 하면 중독되지 않고 주식을 즐길 수 있을까? 아니면 주식투자를 끊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수년 전 국내 최초로 주식중독증 관련 논문을 냈던 경희대병원 반건호 정신과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반 교수는 “성공사례보다 주식투자로 인한 실패사례를 많이 접하라”고 조언했다. ◇주식투자자 4명 중 1명은 중독증세= 반 교수는 수년 전 ‘주식투자자 4명 중 1명은 주식중독증 환자이다’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논문 발표 후 “주식중독증을 치료하고 싶다”는 투자가들의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PC를 이용한 HTS(홈트레이딩시스템)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 반 교수는 객장을 찾은 개인 주식투자자 204명을 대상으로 투자 관련 설문 및 우울증, 간이 정신진단검사 등의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56명(27.5%)이 중독군으로 분류됐으며 이들은 주식 투자로 인해 예민함, 우울증, 불안, 적대감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독자들은 비중독자에 비해 투자 손실로 신체적ㆍ심리적 문제를 경험한 경우가 월등히 많았다. 주식중독증에 관한 논문을 해외에서도 찾기 힘들었던 당시 소아청소년 정신질환이 전공이었던 반 교수가 주식중독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모의 주식 투자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청소년들의 사례를 접하고 나서다. 멀쩡하던 아이가 주식 투자에 빠져 있는 부모로부터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해 학교생활에 적응치 못하고 일탈행위를 일삼게 된 사례들이다. 반 교수는 “주식 투자할 시간에 자녀와 대화하고 가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주식에 빠져 있는 동안 자녀 망가져”= 반 교수는 “지금도 주변에서 주식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 말린다”며 “가족을 위해 큰 돈을 벌려고 주식에 투자한다지만 막상 돈을 벌면 쓰러다니느라 가족에게 더 소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온 한 아이의 아버지는 퇴근 후 밤새 인터넷으로 나스닥(미국 주식시장) 등 각종 주식정보를 찾곤해 자녀에게는 전혀 관심을 쏟지 않았다”며 상담사례를 소개했다. 주식중독자들의 경우 직업ㆍ학력이 번듯한 경우가 많았다. 당시 반 교수의 설문조사 대상 중 82%가 대졸이었다. 그렇다고 반 교수의 주위에 주식 투자 성공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알던 한 레지던트는 수년간 30억원을 벌어 그 돈으로 병원을 개원했다. 하지만 그의 사례를 보고 주식 투자에 나선 사람들은 대부분 손해를 봤다. 반 교수는 “주위에서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다보면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며 “그러나 성공할 자신이 없어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주식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대박을 터트린 사람의 성공수기보다는 실패한 사람의 실패수기를 먼저 읽을 것을 권했다. 언론과 방송은 성공한 사람의 얘기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실패사례를 접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반 교수는 “실패 원인을 잘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식중독증 심하면 클리닉 이용하세요 주식 투자의 문제점은 수익이 나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물론 고수들의 경우 투자금액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이익금을 따로 관리하는 등 철저한 관리를 하지만 대부분의 개미 투자가들은 이익을 보면 볼수록 투자금을 늘려 결국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주식 투자를 끊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반건호 교수는 우선 금연할 때 처럼 하라고 조언한다. 금연하려는 이들이 ‘담배를 끊겠다’고 선전포고하는 것처럼 일단 주위 사람들에게 ‘주식 투자를 끊겠다’고 말하라는 것이다. 주식중독자 스스로 병원을 찾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중독증상이 심할 경우 가족 등 주위 사람들이 병원의 중독클리닉 등을 찾아 도움을 받도록 권유하는 것도 좋다. 반 교수는 “사실 주식중독은 질병 개념이기보다는 하나의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다만 중독 개념으로 볼 때 끊고자 하면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운동 등 주식을 대신해 집중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에 며칠간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나거나 병원에서 실시하는 중독치료 캠프에 참가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컴퓨터를 가까이 하다보면 또 다시 HTS에 접속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해지기 때문에 가급적 멀리하는 게 좋다. 당분간 펀드 등 주식을 떠올리게 하는 간접투자상품 투자를 중단하고, 가족과 대화하거나 취미활동을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독되지 않고 정말로 건전하게 주식 투자를 즐기며 하고 싶다’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반 교수는 “혼자 주식 투자에 매진할 경우 중독에 빠지기 쉽다”며 “동호회 등을 이용해 자신을 견제할 수 있는 타인과 함께 투자하는 것이 중독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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