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가 저성장 기조 장기화를 경고하면서 삼성그룹은 물론 재계 전반에 걸쳐 장기불황에 대비한 내년 경영계획 수립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시적 경기침체가 아닌 '저성장 모드'를 근거로 한 경영 패러다임 변화가 그것이다.
삼성 각 계열사는 오는 30일까지 내년도 경영계획을 수립해 그룹에 보고할 예정으로 당장 2013년 경영계획에서 패러다임 변화가 일정 부분 반영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의 한 핵심관계자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선별투자와 불필요한 사업을 제거하는 등 가지치기를 통한 사업 구조조정 등이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생존능력을 키우고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게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결국 라스트 서바이버(마지막 생존자)가 돼야 살 수 있다"며 "오히려 이번 기회에 위기에 처한 유럽과 일본 등 해외 기업들을 인수, 경쟁자를 무력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재계에서 목소리 커지는 '경영 패러다임' 전환=저성장 기조 장기화에 따른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를 전망하는 목소리는 삼성뿐만이 아니다. 두산그룹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는 상태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최근 "현재 경영상황은 보수적 혹은 혁신적이라고 구분 지을 수 있을 만큼 2차원적이지 않다"며 "세계적 저성장 시대에 맞는 경영의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맞춰 두산은 현재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외에 LGㆍ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도 내년 및 중장기 경영계획에 저성장 기조 장기화를 어떻게 담을지 고민하고 있다.
당장 삼성그룹의 경우 2013년에는 사상 최대 투자보다는 숨고르기를 통한 내실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현금확보, 사업 구조조정을 통한 내부 체질 강화, 인력 재배치 등을 주요 전략으로 삼을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뿐 아니라 다른 그룹도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본지가 10대 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경영계획 전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10곳 중 9곳이 인위적 구조조정도 고려한다고 답한 바 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저성장 기조 정착 외에도 내년의 경우 한번 쉬고 갈 때가 됐다"며 "기존 사업과 신사업 등 전방위에서 여러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당분간 재계의 경영화두는 공격경영 대신 보수경영으로 급격히 옮아갈 것"이라며 "회사별로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금확보에서부터 몸집 줄이기 등의 다양한 방안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저성장 경영 패러다임, 특허도 고려해야=이런 가운데 저성장에 근거한 경영계획 수립시 특허전과 무역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해외 기업과 정부가 특허 등을 무기로 경쟁기업들을 더욱 공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기업들이 최근 들어 저가제품을 앞세운 신흥국 기업의 시장잠식을 우려해 유럽연합(EU) 집행위에 신흥국 제품에 대한 덤핑 혐의 조사 등을 요청하는 등 자국 시장 지키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외에도 특허공격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일본 기업들이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공격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유는 자사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을 괴롭혀야 하기 때문이다.
◇역발상 전략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저성장 기조 정착은 보수적 경영이 주가 될 수밖에 없으나 그렇다고 너무 몸을 움츠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에 따라 삼성 사장단에 전하는 메시지로 역발상 전략을 준비했다.
유럽 기업들의 군살빼기 전략을 사업기반 확대의 기회로 적극 활용하라는 메시지다. 원천기술과 고급 브랜드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유럽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할 때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으로 유럽 시장 진출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국내 10대 그룹들은 현재 내부 유동성이 풍부한 만큼 추가적인 유동성 확보 전략 대신 유럽 내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사냥하는 역발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저성장 기조에 맞춰 지나치게 보수적인 경영에 집착할 경우 국내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함께 규모의 경제에서 뒤처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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