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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구조개혁] (4) 시장 짓누르는 관치
입력2000-05-11 00:00:00
수정
2000.05.11 00:00:00
성화용 기자
정부 눈치 금융시장 외부 저항력이 없다지난 97년 말 아시아 전역을 휩쓴 외환위기는 금융·외환시장을 개방하기는 했으면서도 정작 시장의 체질은 강화하지지 못했던 국가에 충격이 특히 심했다.
우리나라도 그중 하나. 시장이 시장원리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저항력이 떨어진다. 당시 한국 금융시장은 시장기능이 실종된 상태였다. 당국은 금융시장의 의사결정권자들을 철저히 원격 조정함으로써 「시장지배자」로서의 위치를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가장 먼저 손을 댄 것도 시장에 대한 정부의 참견을 막는 일이었다. 돈값이 비싸져야 할 상황이라면 금리상승을 억지로 막지 말고 버티지 못하는 금융기관은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두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은 한때 요동을 쳤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의 손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체 치유능력을 훌륭히 발휘했다. 오히려 그 당시 정부의 오판(?)으로 냉엄한 시장원리에서 제외돼 퇴출을 모면한 채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킨 일부 시중은행들이 지금까지 우리 경제에 엄청난 부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현 상황을 돌아보면 달라진 게 없다. 금리는 여전히 정부 지시대로 움직이며 주가가 폭락하면 기관들이 동원된다. 환율도 당국의 개입으로 탄력을 잃었다. 은행·투신·증권사에 이르기까지 메이저급 금융기관들이 정부를 대주주로 맞아들여 예전보다 더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인사(人事)부터 지배구조에 이르기까지 당국이 사사건건 간섭하는 실정이다. 도대체 「대환란」을 겪고 얻은 교훈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정부 VS 외국인」의 시장구도=증시와 외환시장을 외국인이 주도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이로 인해 시장이 파행으로 치달으면 정부가 나서 안간힘을 다해 막는 모습이 되풀이되고 있다.
시장은 민간이 주도해야 정상이며 외국인은 민간의 일부를 차지하는 게 맞다. 정부는 「틀」과 「규칙」만 제공하면 된다. 그 균형이 철저히 깨진 데는 정부가 과거의 방식대로 시장에 깊숙이 개입한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3월 금리가 올라갈 만하자 당국은 은행에 정기예금 금리를 낮추라고 두차례나 지도에 나섰다. 환율통제가 심해지면서 국책은행에는 정부의 달러매입 지시를 전담하는 딜러가 전화통 앞에 대기하고 있다. 현대쇼크로 주가가 폭락하자 이틀째 되던 날 당국은 투신과 은행에 「지시」와 다를 바 없는 주식매수 협조요청을 했다.
이쯤 되면 규모가 큰 금융기관이라도 스스로 시장을 선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자유로운 외국인들만이 느려터진 정부 의사결정의 틈새를 비집고 자유롭게 시장을 두드린다. 정부와 외국인의 대결구도 속에 정작 주도세력이 돼야 할 국내 민간주체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거꾸로 가는 민영화=민간은행이던 조흥·한빛·서울은행이 사실상 국유화됐다. 외환은행 역시 여전히 정부가 사실상의 최대주주로 남아 있다.
민영화가 추진되던 기업은행은 외환위기 전 민간지분이 35.5%까지 늘어났지만 정부로부터 1조8,000억원을 출자받은 후 정부지분이 98.2%로 커졌다. 산업은행에는 최근 2년여간 무려 정부돈이 5조717억원이나 들어갔다.
민영화는 요원해졌다. 투입된 자본이 너무 커 매각이 쉽지 않을 뿐더러 부실을 떠안기는 데 마구잡이로 활용돼 난맥을 정돈하기 전까지는 물리적으로 민영화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올들어 한국·대한투신마저 국책은행들의 출자로 사실상 국유화됐고 최근에는 대우증권도 산업은행이 인수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한생명까지 포함하면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의 3대축을 이끄는 메이저급 금융기관들 중 다수가 정부 산하에 있는 셈이다. 민간 주도의 자율시장으로 가기까지는 갈길이 너무 멀다.
◇「타율」 정착…시키면 시키는 대로=관변연구소의 한 선임연구원은 『시중은행이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만들면서도 당국과 먼저 「협의」하고서야 의사결정을 하는 등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개탄했다.
실제로 지배구조부터 경영진 인사, 하다못해 명예퇴직금을 지급하는 일까지 은행들은 일일이 당국의 「승낙」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완벽하게 「타율」이 정착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화용기자SHY@SED.CO.KR
입력시간 2000/05/1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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