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ㆍ4분기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가계의 실질소득이 3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반면 소득에 대한 소비지출 규모를 보여주는 ‘평균소비성향’은 3ㆍ4분기 기준으로 23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겉으로는 민간소비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전ㆍ월세 등 주거 비용과 교통비 등 ‘생활 비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없고 나가는 돈만 많아져 삶의 질이 그만큼 열악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3ㆍ4분기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전국가구(농어가 가구 제외)의 소득은 월평균 294만8,700원으로 전년 동기의 288만7,500원보다 2.1% 늘었다. 하지만 소비자 물가 상승률(2.3%)을 감안한 실질소득은 3ㆍ4분기 중 월평균 249만2,600원으로 전년 동기의 288만7,500원보다 0.2% 줄었다. 최연옥 통계청 고용복지통계과장은 “전국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가계수지 통계가 2003년부터 작성돼 정확한 시계열 통계는 없지만 2002년 3ㆍ4분기 실질소득이 감소세를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기업들이 교역조건 악화로 이익이 줄어들자 지난해보다 상여금을 덜 지급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도시 지역 근로자 가구의 소득도 월평균 331만9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321만5,500원에서 3.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증가율은 99년 2ㆍ4분기의 0.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득은 이처럼 뒷걸음질치고 있는데 지출은 줄달음질을 하고 있다. 도시 근로자가구의 가계 지출액은 월평균 259만8,300원으로 전년 동기의 241만7,100원보다 5.2% 늘었다. 가계지출 가운데 소비지출은 4.0% 증가한 215만2,700원을 기록했다. 특히 세금과 각종 연금 등을 산출한 ‘비소비 지출’은 11.3%나 늘어난 44만5,700원이었다. 재산세 납부시기가 지난해는 7월과 10월이었으나 올해는 10월이 9월로 바뀌면서 조세 증가율만도 무려 20.2%에 달했다. 지출이 이처럼 늘어나면서 소비지출을 처분가능 소득(전체소득-비소비 지출)으로 나눠 계산한 평균소비성향은 도시 근로자가구 기준으로 75.1%에 달해 3ㆍ4분기 기준으로 82년의 77.0%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품목별 소비지출 현황을 보면 월세와 집 수리비 등 주거 관련 소비지출이 8.4% 늘어났고 가구가사 사용품 7.2%, 교통통신은 10.9% 각각 늘어났다. 반면 식료품 소비지출은 1.9% 감소했고 잡비도 4.1% 줄었다. 소비 증가가 돈이 늘어난 데 따른 ‘능동적 지출’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지출 증가에 의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상위 20% 계층의 소득을 하위 20% 계층의 소득으로 나눠 소득의 편중도를 보여주는 소득배율은 전국 가구 기준으로 7.28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의 7.30보다 조금 낮아졌다. 도시 근로자 가구를 기준으로 할 때도 5.35에서 5.34로 소폭 내려갔다. 이는 양극화가 해소됐다기보다 고소득층의 소득 증가가 정체된 데 따른 것으로 민간 소비에는 또 다른 부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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