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증권사를 찾은 회사원 김모(38)씨는 증권사의 다양한 상품구색에 깜짝 놀랐다. 주식형이나 채권형 가운데 적당한 상품을 하나 고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지만 증권사 직원들이 펼쳐놓은 투자 보따리에 살만한 상품이 너무 많아 행복한 고민을 해야 했다. 그가 자신의 투자성향과 소득 등을 감안해 고심 끝에 고른 상품은 주가연계펀드(ELF). 그는 수익률이 나날이 불어나고 있는 이 상품을 선택한 것에 만족, 또 다른 상품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 최근 들어 김씨와 같이 행복한 고민을 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 고객자산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모든 금융회사들이 펀드와 종합자산관리계좌(CMA)는 기본이고 각종 ELF, 주가연계증권(ELS),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파생상품, 랩어카운트 등 새로운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여기에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오는 2009년 시행되면 상품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난다. 바야흐로 투자자가 원하는 상품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맞춤형 상품 시대’가 열린 것이다. ◇고르는 재미가 있다= 그냥 펀드나 들 생각으로 증권사 지점을 방문한 투자자라면 다양한 투자상품에 놀란다. 펀드의 종류만 해도 인덱스, 에너지, 가치주, 지주사, 멀티클래스 등으로 엄청난데다 ELS, ELF, ELW 같은 주식파생 상품은 하루에도 수 십개씩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랩어카운트, 자산관리 상담 등 증권사만의 특징적인 서비스까지 있어 어떤 투자상품을 선택할지 고민에 빠지기 마련이다. 증권사 최고 인기 상품인 CMA는 월급통장 마케팅이 실효를 거두면서 은행권 자금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증권사의 CMA 잔액은 7월 말 21조1,000억원으로 증가, 지난해말 8조6,000억원에 비해 140% 이상 증가했다. 특히 최근에는 콜금리 인상으로 증권업계와 은행간, 또 증권사들간의 유치 경쟁이 거세지면서 금리도 5%대로 올라가고 있다. 펀드도 종류와 수가 워낙 많아지자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수준을 넘어 유망 펀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나왔다. 우리투자증권은 펀드 홍수 속에 고민하는 투자자를 위해 분기별로 섹터별 유망펀드만을 엄선한 ‘베스트컬렉션펀드’를 발표한다. 대우증권은 새로운 투자 트렌드를 발굴, 우량 상품을 제시하는 ‘메가트렌드’를 내놓고 있다. 삼성증권도 매월 자산배분 전략을 소개하고 유망상품을 발표하고 추천한다. 부자의 전유물로 여겼던 랩어카운트는 문턱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주식, 채권, 파생상품까지 하나의 개인별 계좌를 통해 관리해주는 랩어카운트는 지난 2003년 등장해 최근 7조원 규모로 시장이 급성장했다. 가입 한도도 낮아지고 있다. 삼성증권의 아너스랩 표준형은 최소 1억원이 있어야 하지만 대우증권 공격형 투자형은 최소 100만원, 동양 월드드림랩은 적립식으로 10만원이면 가능하다.
대규모 손해배상 따른 퇴출 금융사 나올수도 금융회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영역을 결합한 새로운 금융상품을 쏟아내는 것은 고객을 유혹, 더 많은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복잡한 상품이 나옴에 따라 소비자들을 혼란하게 만들어 분쟁을 일으키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쟁도 내년부터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내년 2월부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강력한 조치가 시행돼 금융회사들이 소비자들의 혼란을 최소화시키는 의무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금융회사가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는 상품에 대한 설명을 반드시 해야 한다. 투자상품을 판매할 때는 상품의 내용은 물론이고 위험성 등을 투자자에게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는 ‘설명의무제도’가 도입된다. 현재 이 제도는 펀드나 선물 등 일부에서만 적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주식 등 직접투자상품까지 확대된다. 결국 주식투자 고객에게 투자상품의 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투자를 권유해 고객이 손실을 보면 금융투자 회사측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금융회사가 손해 배상을 피하려면 고객으로부터 설명이해 서명 등 기록을 철저히 남기게 되지만 서명만 받았다고 해서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정말 투자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제공했는지, 손실여부가 투자자에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증명하는 것 자체도 이제부터는 금융회사의 몫이 된다. 금융상품 가입 계약이후 7일이내에는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는 ‘계약해지(Cooling-Off) 제도’도 새로 도입된다. 또 투자자에게 금융상품을 권유하기 이전에 반드시 면담 등을 통해 투자목적, 투자경험 등 특성을 파악하도록 하는 이른바 ‘고객특성파악(Know-your-customer)제도’도 의무적으로 시행된다. 아울러 투자자의 특성에 적합하게 투자 권유를 하도록 하는 ‘적합성 원칙’ 도 도입, 장외파생상품과 같이 위험이 큰 금융투자상품을 무분별하게 권유하지 못하게 된다. 동시에 투자자로부터 요청을 받지 않고 방문ㆍ전화 등을 통해 투자권유를 하는 행위 등도 앞으로는 금지된다. 금융회사들로서는 생존을 위해 소비자들의 권리를 철저히 존중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