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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 부실철(사설)
입력1996-10-11 00:00:00
수정
1996.10.11 00:00:00
유사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라는 경부고속전철 건설사업이 총체적 부실로 밝혀져 충격을 던지고 있다.고속철은 건설계획 단계에서부터 졸속의 연속이었다. 사전준비의 부족에다가 부실 설계에 이어 시공 감독까지 원칙이 지켜진게 없다. 그 결과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해져 공기 연장 사업비 증가 등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 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사회적 손실은 헤아리기 어렵다.
도대체 망국적인 부실병을 언제까지 앓아야 제자리로 돌아올지 암울하기만 하다.
한국고속철도공단 김한종이사장은 9일 국회 건설교통위 국감에서 고속철의 공기와 사업비 등에 대한 계획을 전면 수정, 내년 상반기까지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누구의 책임인가. 책임을 묻고 책임지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국민의 혈세를 이처럼 헛쓰고도 책임을 지거나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면 정부를 믿을수 없게 된다. 국가적 사업을 실험실에서 실습하듯 하고 실패하거나 빗나가도 유야무야로 끝낸다면, 또 정책이 정치에 휘둘려 오락가락 한다면 국가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졸속계획 설계시공 부실
고속전철의 부실화는 이미 예견되어있던 일이다. 지난 92년 대선을 앞두고 차종이 결정되기도 전에 착공됐던 것부터 수상쩍었다. 차량이 선정되고 난 다음 차량의 특성에 맞게 설계 시공되어야 하는 기본원칙이 무시된 것이다.
사전 준비 단계도 생략되었다. 20년정도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다음 건설에 들어갔다는 프랑스의 사례에 비춰보면 얼마나 졸속이었는가를 알수 있다. 졸속행정은 시행착오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손실은 국민부담으로
부실설계도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경험이 없는 국내 업체가 독자적으로 설계 시공한 것이 무리였다. 고속철 건설에 참여한 건설업체 32개사 중 10개사, 설계업체 13개사 중 3개사가 무경험 업체라는 사실이 국감에서 드러났다.
여기에 고질적인 하도급 비리까지 더해졌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감독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차질을 막거나 줄일 수 있었겠으나 감독기능까지 부실했던 것이다. 건설교통부 특검에서 48가지의 부실사례가 적발됐는데 그 중에는 대부분 교각의 기초 하부 주변이 콘크리트가 아닌 흙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준비 부족→부실 설계→공사 중단→노선 변경→설계 변경→재시공→공기 지연→공사비 추가로 이어지는 부실과 불신 덩어리가 된것이다. 상리터널이 그 대표적인 예다. 폐광이 설계 이후에 갑자기 남몰래 생긴 것도 아닌데 그것도 모르고 터널을 뚫었다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뿐만아니라 정치 논리와 민원 지역이기주의가 거들어 부실과 공기지연을 부채질했다. 사업비나 타당성은 아랑곳 없이 역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고 대구와 대전 역사는 지상과 지하를 오르락 내리락했다. 경주노선의 논란은 더 가경이었다. 당초의 대구부산 직행 노선을 경주로 우회시키더니 그마저 된다 안된다로 장기간 실랑이를 벌였다. 사전 지질조사와 역사선정 노선결정등에 대한 부처간 협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엄중문책으로 교훈을
고속철은 시속 3백㎞가 넘는 고속으로 달리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하면 대형사고가 된다. 소음 먼지등 환경과 생태계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재앙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건설과정에서 부실이 발견되고 재앙을 막을 수 있게 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다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재정손실, 국민적인 실망, 정부에 대한 불신, 부실왕국이라는 국가적 오명의 상실감이 너무 크다.
10조원이 넘게 들어가는 최대 국책사업이 상처투성이가 된것도 가슴쓰린데 공기가 2∼3년 지연되고 추가사업비가 어림잡아 3조∼4조원 들어가게 됐으니 분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쟁력 10%높이기」로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 정부가 이 엄청난 시간과 돈을 날리고도 책임을 지지않겠다고 발뺌을 할 수 없다. 근로자세금 깎아주기나 중소기업 도와주기에 인색했던 것이 부질없었던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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