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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창립 50돌/“무에서 유 창조” 한국경제발전의 상징
입력1997-05-23 00:00:00
수정
1997.05.23 00:00:00
정승량 기자
◎20세기를 이끈 정주영/세계기업 일군 농부 아들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굴지의 기업군을 일군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은 한국경제발전의 상징적 인물이다. 가난의 질곡을 헤쳐나오기 위해 한국경제가 안간힘을 썼듯 그의 인생도 비슷하다.
농부의 아들에서 노동판, 쌀가게점원, 자동차수리 등 거친 생활현장을 전전하며 그가 갖게 된 생활철학은 부지런함이며 또한 근검절약으로 대변되는 「희망의 철학」이다.
아산이 47년 현대토건사를 세운 이래 현대는 이제 한국 최대의 기업은 물론 「21세기를 이끌어 갈 미래파워기업」으로 선정될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60년대 시작된 역사적인 조국근대화의 사회간접시설은 거의 그에 의해 주도됐다. 소양강 다목적댐, 경부고속도로, 울산조선소, 원자력발전소 등 국내굴지의 대공사는 모두 현대의 작품이다.
현대는 국내에서 쌓아 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해외시장에 눈을 돌렸다. 65년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70년대 후반 중동에 진출 20세기 최대의 역사라 불리는 사우디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성공리에 마침으로써 현대가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기술의존에서 벗어나 우리 고유의 독자 기술만이 국제경쟁 무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고 판단해 76년 최초의 국산고유모델인 「포니」를 개발했고, 86년 「엑셀」로 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지금 현대자동차는 5대양 6대주 1백90여개 나라의 곳곳을 누비고 있다.
농부의 아들인만큼 국토확장에 대한 집념도 남달랐다. 그는 한국 서쪽해안의 지도를 바꾸었고 통일에 대한 강한 목마름으로 89년 북한을 방문, 금강산개발합의 등 남북경협의 빗장을 열었다.
이어 90년 소련을 방문하는 등 북방민간외교의 첨병으로 뛰었다. 문화예술과 국민체육 진흥에도 적극 참여해 스포츠단 창단 등 스포츠를 통한 국제 경쟁력 향상에 이바지 했다. 그는 한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선양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얻은 서울올림픽 유치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고 이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난 77년부터 10년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5차례나 연임하면서 첨단기술력을 바탕으로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시장경제원리를 바탕으로한 민간주도경제를 주장하는 등 근대화 이후 한국기업들이 나아갈 방향과 역할을 제시해 재계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김희중>
◎정주영… 불가능 없다/서산간척지 물막이공사 「정주영 공법」 유명
현대의 오늘을 일군 정주영 명예회장은 특별한 사람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되게 만들었다. 그에 얽힌 에피소드는 그의 남다름을 한껏 고조시킨다.
지난 52년 12월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다. 아이젠하워는 부산의 유엔군묘지를 방문하겠다고 했다. 미군측에서는 엄동설한에 묘지를 파랗게 단장해 달라는 황당한 주문을 했다. 푸른 것이라고는 거의 볼 수 없는 한겨울이지만 정회장은 『파랗게만 해주면 된다』는 주문에 수십트럭분의 보리를 옮겨 심어 묘지를 녹색으로 만들었다. 이후 미8군공사에서 현대는 독보적 지위를 누렸다.
현대중공업의 창업은 황당무개 자체다. 건설로 기술을 어느 정도 쌓은 그는 조선도 공장짓는 것과 다를게 없다는 생각으로 배를 만들기로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국부가 별로 없던터라 외자를 끌어써야 했다. 정회장은 71년 9월 영국 버클레이 은행으로부터 차관을 얻기 위해 A&P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다. 대답은 『No.』. 그때 그는 주머니에서 5백원 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며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철갑선을 만든 사실을 상기시켜 은행차관을 따냈다.
70년대 한국의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한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사업은 신도 하기 어려운 공사라고 했을 정도. 모든 기자재를 울산에서 제작해 세계최대의 태풍권인 필리핀해양을 지나 동남아 해상, 몬수운의 인도양을 거쳐서 걸프만까지 대형 바지선을 끌고 가는 대양수송작전이라는 모험과 도전을 걸었다. 수심 30m나 되는 곳에서 파도에 흔들거리면서 중량 5백톤짜리 자켓을 한계 오차 5㎝ 이내로 꼭 20㎞ 간격으로 심해에 설치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정회장은 창조적인 발상과 그치질 모르는 도전의식으로 가로 18, 세로 20, 높이 36m로 무게가 5백톤이나 되는 자켓 89개를 울산에서 운반해와 5㎝ 이내의 오차로 완벽하게 설치해 20세기 최대의 역사라 불리우는 사우디 주베일산업항은 세계 언론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밖에 바다를 메워 옥토를 만든 서산간척지의 물막이 공사때 대형유조선을 투입해 일명 「정주영 공법」을 창안한 일도 남다른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21세기를 이끌 정몽구/「가치경영」 새바람 주역
지난 96년 1월3일 현대그룹의 3대수장으로 취임한 정몽구 회장은 21세기 세계적인 기업으로서의 현대그룹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변화의 새바람을 불어 일으키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취임사에서 밝혔던 금융, 정보통신, 우주항공, 제철 등 새로운 분야진출을 가시화했고 「가치경영」과 「책임자율경영」을 정착시킴으로써 21세기를 맞는 새로운 그룹의 틀을 갖추었다.
그는 새로운 경영슬로건으로 「가치경영」을 선언했다. 가치경영의 요체는 인간의 삶에 유익한 가치를 가장 빨리 제공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자는 것.
그는 「가치경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투명한 경영과 기술중시 경영방침을 시행하고 있다. 투명한 경영은 국내 기업 최초로 실시한 「사외이사제」와 「상근감사제도」 등으로 구체화됐다.
정회장은 또 요즘처럼 기업환경의 변화가 빠르고 복잡한 시대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각 계열사가 책임과 자율을 함께 갖는 「자율경영」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취임 첫 해를 보낸 지난해 현대그룹이 무분규를 이룩한 것도 자율경영의 한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기술의 중요성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한다. 그가 매년 4월 22일을 「현대 기술의 날」로 정해 그룹 계열사뿐만 아니라 협력업체까지 「현대기술상」을 포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기술중시 경영의 일환이다.
경영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선봉장이 되고 있다. 국경없는 경쟁시대에서는 제품의 개발, 생산, 판매, 서비스와 같은 기업경영의 전과정을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경영을 중시하고 있는 것도 정회장 취임후 현대의 변화된 모습이다. 정회장은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에는 환경문제가 기업 생존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해 환경친화경영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한 첫 가시적인 조치가 지난해 8월 그룹차원의 「현대환경연구원」의 설립이었다. 정회장은 그룹의 환경연구원을 그룹회장의 직속기구로 둠으로써 이를 구심점으로 환경친화경영을 구체화하려 한다.
그는 창업 50돌을 맞아 「21세기를 창조하는 기업, 현대」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한국경제 성장의 중추역을 맡았던 자동차나 조선, 제철, 전자 등 기간산업을 계속 보강하고 경제선진화를 위한 정보통신이나 우주항공, 신소재 등 미래첨단산업과 제철사업 등 고부가가치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김희중>
◎정주영가의 사람들/남동생 4명·매제 1명·자녀 6남1녀/각 계열업체서 맹활약
「정주영가 사람들」은 창업시절부터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해오다 분가하거나 함께 일하고 있는 4명의 남동생과 1명의 매제 등 형제들, 그리고 각 계열사를 관장하고 있는 6남1녀의 자녀들로 구성돼 있다.
정명예회장은 국내 다른 재벌기업들의 기업사에서 발견하기 힘든 가정과 가족의 복을 누린 기업인이다.
우선 형제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그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첫째 동생인 인영 한나그룹 명예회장은 53년 현대건설에 전무로 입사, 75년 분가할때 까지 20년이상 현대의 틀을 닦았다. 또 순영 성우그룹회장, 세영 현대자동차명예회장, 상영 금강고려화학회장 등 다른 동생들도 50년대 후반부터 정명예회장과 생사고락을 같이해 왔다. 또 유일한 매제인 김영주 한국프랜지회장은 정명예회장과는 창업 동기다.
노회장의 아들 6명(타계한 2명 제외)은 현재 실질적 장남인 정몽구 그룹회장(2남)을 정점으로 각 주력 계열사를 맡아 모두 경영에 참여, 왕성한 사업활동을 하고 있다. 정회장은 그룹회장외에도 정공·우주항공·인천제철·산업개발·자동차써비스·강관 등 6개 계열사의 수장이다.
3남 몽근씨는 금강산업개발을 통해 기반을 닦고 있고, 5남 몽헌씨는 그룹부회장 직함외에 건설·엘리베이터·전자·금강기획·종합상사·정보기술·현대상선·엔지니어링 등 8개 계열사 회장을 맡아 경영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31세때 현대중공업 사장에 취임할 정도로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던 6남 몽준씨는 현재 고문직으로 자리를 옮겨 현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는 점이 다른 형제들과 다른 특징이다. 그는 국회의원, 대한축구협회장, 국제축구연맹(FIFA)부회장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다.
7남 몽윤씨는 현대할부금융회장으로 경영일선에 있으며 8남인 몽일씨도 현대종합금융사장으로 형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유일한 사위인 정희영씨는 그룹과는 별개 기업인 선진해운 사장이다.
다복한 대가족을 이끌어온 정명예회장은 다른 한편으로 동생과 두아들을 잃어 한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기도 했다.<정승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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