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문조사에서 고유가로 엄청난 오일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중동 산유국들도 현재의 유가에 상당한 거품이 잠재해 있음을 인정했다. 이들이 제시한 적정 유가는 배럴당 50달러대로 유종에 따른 가격차를 감안하더라도 현재 유가는 30% 이상 과대평가된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거품은 중동의 지속적인 정치적 긴장과 맞물려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단기적으로 더 부풀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산유국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적정 유가는 50달러이지만…=라시드 빈 칼리드 오만 석유가스부 장관보좌관은 “현재 세계경제 성장세를 감안할 때 적정 유가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45~50달러”라고 밝혔다. 국제문제 전문가인 그는 부내 서열 3~4위의 고위급으로 특히 유가분석에 높은 식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리 알 아니 이라크 석유부 국장과 압둘라 알 다헤리 아부다비국영석유사 이사는 적정 유가에 대해 “50달러대”라고 잘라 말했다. 이란 국영석유사의 임원급인 세예드 모하마드 타바타바이는 “현재의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가 잘 나가고 있다”면서도 “유가 적정치는 50달러대”임을 인정했다. 다만 쿠웨이트 국영석유사의 유세프 알 카반디 이사만은 “현재 유가 수준은 별 문제가 없다”며 “두바이유 65달러 정도면 적정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5인의 석유전문가는 공급 면에서 산유국의 석유개발투자 저조와 메이저 석유회사 및 소비국이 정제시설을 늘리지 않았고 이에 비해 중국ㆍ인도 등 아시아 경제성장 등으로 인한 석유 수요급증이 구조적으로 맞물리면서 유가 거품을 형성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이라크ㆍ이란ㆍ나이지리아 등 주요 산유국의 정정불안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거품은 더욱 커졌고 투기세력은 이를 더욱 부풀렸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카반디 이사는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었다”며 “투기세력은 중동의 정치적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가 신기록 행진은 계속된다=유가 거품으로 석유 소비국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기름값 바가지’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산유국 관계자들은 국제유가의 신기록 경신 행진이 반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라크의 알 아니 국장은 “전세계 원유 초과공급량이 하루 100만배럴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단기간에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서 “중동, 특히 이란 핵 사태 발발시 유가는 지금보다 훨씬 치솟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빈 칼리드 오만 석유가스부 장관보좌관은 “배럴당 두바이유는 75달러, WTI는 80달러 이상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알 다헤리 이사는 “이상 기후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중동 정세불안에 올 여름 허리케인까지 겹치면 상상하기 싫을 만큼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고 말해 유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한 번쯤 도래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산유국들도 공급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알 다헤리 이사는 “고유가와 정세불안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석유를 공급한 노하우가 쌓여 있다”고 강조했고 빈 칼리드 장관보좌관은 “한국이 석유ㆍ가스 공급에 어려움을 겪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