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을 맞은 12일, 협업과 분업론을 내세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재무부 남대문출장소’라는 한은의 오랜 오명을 철저히 씻어내기로 작심한 듯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연구원 조찬강연 자리에서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 등 정부ㆍ여당 인사들의 금리 관련 언급에 대해 강경한 어조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여의도(여당)’이나 ‘과천(재경부)’에서는 자신의 일을 하고 중앙은행의 영역인 통화정책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공표였다. 한은 초임 과장 시절부터 매파로 분류된 그의 색깔을 십분 드러낸 셈이다. 이 총재는 이날 미리 배포한 강연원고는 들쳐보지도 않고 “모두 아는 얘기지만 이를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전달하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곧바로 조사국장을 지냈던 98년 당시 한국 경제를 되짚으며 9ㆍ11테러 이후 미국ㆍ한국의 정책금리가 한꺼번에 내려간 점이 지금까지의 통화정책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이 총재는 “과거 통화정책이 항상 최적 수준이었던 것은 아니며 과거에 미흡했던 부분을 시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혀 추가적인 금리인상 단행 의지를 또 한번 드러냈다. 이후 이 총재는 금리결정 영역을 침범하는 일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하반기 경기하강에 대비하려면 한은도 물가만 보지 말라’는 주문부터 반박했다. 이 총재는 “특정 부서나 팀을 맡고 있는 팀장에게 팀장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조직의 장으로서 생각하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며 “인간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시스템이지 인간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은 통화정책만, 거시정책 담당자는 해당 분야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통화당국은 물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각자가 많은 역할을 다해 발전을 이룬다는 논리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고 못박았다. 경기부양론을 들고 나온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 국민 절대다수가 성장 쪽에 경도돼 있다”고 운을 뗀 뒤 “특히 정책 분야에 영향력이 있으신 분들이 그런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그 같은 점 때문에 오늘 일부러 이 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고 말해 이날 발언이 의도된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제정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올해도 이미 7월에 접어들어 올해 성장률은 사실상 거의 정지돼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정책적 변수를 써서 올해 성장률을 움직일 여지는 별로 없다”고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어 “장기적 성장을 논의하는 데 통화정책이 기여할 부분은 적다”며 “정책은 경제가 움직이는 환경만 만들어줄 뿐 나머지는 가계나 기업이 결정할 일”이라며 정책당국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했다. 이날 이 총재는 통화정책에 대한 시각을 ‘안정’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다. 그는 강연 말미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며 “거시정책은 다른 말로 안정화정책이며 국민경제의 장기적 발전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를 위해 중앙은행이 구체적으로 부여받은 수단은 본원통화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라며 “중앙은행에 상당히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갖고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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