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7.2%에 이르는 2ㆍ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발표한 지난 26일. 주물업체에 다니는 B(57)씨는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경제 성적표를 들으면서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 회사에서만 30년 넘게 몸 담았고 지금은 어엿한 영업이사다. 자동차 부품 등을 주로 납품하는 그의 회사는 3년째 적자다. 월급 올리는 것은 딴 나라 얘기다. 깎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그의 연봉은 주요 대기업 평균 연봉(7,000만~8,0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등록금과 고등학생 딸의 학원비까지 대고 나면 가계부는 사실상 적자다. B씨의 회사가 적자에 허덕이는 동안 대기업 전자업체 메모리사업부의 한 차장은 연초 그의 회사 10년차 직원 연봉의 4분의1에 이르는 1,000만원가량을 이익배분제(PS)로 받았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2ㆍ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보다 20% 이상 늘어난 8,000억원가량에 이를 듯하다. 우리 경제는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올 상반기를 고비로 금융위기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사실 7%대의 성장률은 준선진국인 우리에게 '꿈의 수치'다. 한은의 분석대로 '회복세를 넘어 확장국면'이다. 그럼에도 일반서민들은 지갑이 오히려 얇아졌다고 말한다. 정부 당국이 원인을 묻는 질문에 가장 먼저 꺼내는 답은 '양극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의 성장괴리를 전하고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로 부의 편중을 얘기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호주머니가 채워지지 않는 이유를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오히려 양극화에 집착하는 논리는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자에게 주자는' 일종의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7%대의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가운데도 국민 지갑이 오히려 얇아지는 이유로 '5대 함정'을 든다. 우선 ▦장기간 고환율 정책의 수혜가 수출기업에 집중되는 동안 환율상승에 따른 물가앙등으로 서민의 실질소득은 줄어드는 '고환율의 함정' ▦이에 따라 금융회복의 효과가 대기업과 수출에 몰리는 동안 서비스업을 기반으로 한 내수 업종은 회복이 더딘 '경기회복의 함정' 등 양극화와 연계된 것들이 꼽힌다. 여기에 ▦과거 2년 동안 축적된 40만개가량의 일자리 공급 부족과 고용의 질이 떨어진 '일자리의 함정' ▦7년 만에 400조원 가까이 개인부채가 늘면서 소비를 가로막는 '빚의 함정' ▦수출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동안 내수ㆍ중소기업은 보호의 그늘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정규직 근로자와 전문직이 진입규제로 독점적 이익을 얻는 동안 여기에 발을 담그지 못한 인력이 자영업으로 빠져 지나친 경쟁을 벌이는 '과당경쟁의 함정' 등도 서민들의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지 못하는 요인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연구소 고위임원은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지는 양극화 해소 논리는 대기업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나누자는 논리로 귀결될 수 있다"며 "경제에 깔려 있는 다양한 덫을 일괄적으로 해소할 만한 종합해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