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올해 채용규모를 축소시킬 것으로 파악됐다. 불안한 경기 상황이 채용시장에도 직격탄을 가했음을 알 수 있다. 경기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면서 가급적 고정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고충으로 읽혀진다. 특히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공기업은 한명도 새로 뽑지 않고 금융과 정보기술(IT) 등 인기 업종들이 일제히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고 응답함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최악의 취업 재수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1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잡코리아와 공동으로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하반기 일자리 기상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 하반기 채용계획을 확정한 기업(291개사)들의 신규 채용 예정 규모는 1만9,464명으로 지난해 하반기 채용 규모인 2만178명에 비해 3.5%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상의의 한 관계자는 “조사 시점이 지난 5월 중순이기 때문에 당시 채용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도 한달 새 계획을 바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악화→고용 위축→소비 둔화→투자 축소’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공기업 채용 제로, 섬유ㆍ항공 등 채용 급감=전체 감소폭이 그나마 3.5%에 그친 것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상위 그룹 주력사들이 새 정부의 기대에 최대한 부응하기 위해 채용 규모를 전년 수준과 맞추거나 소폭 늘려잡으며 시늉을 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의 호응에도 한계가 있는 법. 경기가 극도로 나빠지면서 연초 채용을 늘리기로 계획하고도 이를 취소한 곳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A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연초 20% 정도의 채용 확대를 예정했지만 경제 상황이 안개 속에 빠지면서 내년으로 미루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고유가 등 경기 변수에 직접 연결되는 기업일수록 더했다. 섬유의류업은 중국 등에 가격 경쟁력이 뒤지면서 사양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자재값 상승 여파에 따라 영업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16.3%나 줄였다. 고유가 한파를 정면으로 맞고 있는 항공운수업도 5.9%나 줄였다. 미분양에 허덕이고 있는 건설업도 3.3%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금융시장이 불안 국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금융업의 채용도 2.2%가 줄었다. 지난해 하반기 456명을 뽑았던 9개 공기업은 이번에 아예 한 곳도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있는 사람을 잘라내기도 바쁜 터에 새 인원을 선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취업 감소폭 더욱 커질 듯=이번 조사에서는 10곳 중 2개 기업이 아직 채용 여부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영 상황이 악화될 경우 이들은 신규 채용을 취소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실제로 일부 기업은 내년으로 미뤘다. 더욱이 이번 조사 시기가 5월14일부터 22일까지였고 그 사이에 거시경제 상황은 물론이고 유가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더욱 증폭된 점을 고려하면 채용 시장의 한랭 기류도 더욱 빠르게 확산됐을 가능성이 높다. 조사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취업 시장에서는 대기업들이 감기(채용 소폭 축소)에 걸리면 중소기업들은 몸살(채용 중단ㆍ대폭 축소)을 앓는 게 통례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는 한마디로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규제 완화 등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면서 기업들의 화답을 기대했지만 경기 악화 앞에서는 무기력한 수사(修辭)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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