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무섭게 치솟던 속도만큼이나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역외세력에 맞서 1,600원을 방어하겠다는 목소리가 시장을 지배했지만 10일 서울 외환시장 분위기만 봐서는 1,500원선 붕괴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이날 역외세력들이 대거 달러 매도에 나섰다. 이와 관련, 시장관계자들은 "원화약세를 전망하던 역외의 시각이 변화하는 조짐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외환사정 호전=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37원50전 하락했다. 최근 3거래일간 56원50전 폭락하면서 지난 2월23일(1,489원)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환율 하락의 주요인은 한국은행이 매주 해오던 은행권에 대한 달러공급(스와프 경쟁입찰)을 이번주 쉬기로 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무역흑자가 커지고 은행들이 속속 외화차입에 성공하자 은행들이 한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달러사정이 호전된 신호로 해석되면서 시장에 달러 '팔자'가 쏟아졌다. 여기에 이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순매수에 나서면서 주가가 크게 오른 점도 작용했다. 전일 미국증시 약세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지수는 1.91% 상승하며 1,092.20포인트로 마감, 1,100선 탈환까지 노리게 됐다.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을 수시로 현금화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달러화 매도심리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한은은 이날 "외환보유액은 국제기준에 맞는 예치금ㆍ정부채 등으로 필요하면 언제나 현금화할 수 있다"며 중앙은행으로는 이례적으로 외환보유고와 관련, 공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 비자카드의 배당금을 받은 카드사들이 달러화 매도에 나선 데 이어 역외세력까지 대거 달러화를 매도하면서 낙폭이 확대됐다. ◇환율 안정, 아직 시기상조=급한 불은 껐지만 이대로 우리 외환시장이 안정됐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무엇보다도 동유럽을 중심으로 다시 퍼지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위기의 뿌리가 여전하다. 류현정 씨티은행 부장은 "고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당분간 상승세는 주춤할 것"이라면서도 "하락세가 지속될 것인지는 뉴욕증시를 비롯해 외부여건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비자카드의 배당금과 관련한 매도물 출회에 대해서도 시장에서는 '무리'라는 시각이 있다. 신한카드의 한 관계자는 "지난 5일 비자카드로부터 배당금 30만달러가 입금됐는데 당일 바로 환전했다"며 "총 배당금 규모가 150만달러 안팎에 불과해 이를 환율 하락 요인으로 보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고점이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하방 경직성이 탄탄하다는 점 역시 환율에는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한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달러화가 충분히 오른 것 같지만 여전히 추가 상승시도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라며 "주식 역송금을 비롯한 꾸준한 결제수요와 당국의 개입 가능성 등이 맞물려 당분간 1,550원을 기준으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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