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만 해도 가계대출 문제는 한숨 돌리는 듯했다. 금리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없는 고정금리대출이 빠른 속도로 늘고 가계대출 연체율도 하락하면서 가계대출의 불안요인이 사그라진 것이다. 가계의 대출증가 속도도 무뎌지면서 밝은 신호도 많았다.
하지만 이도 잠시였다. 새해 들면서 고정금리대출 비중이 다시 감소세로 전환됐고 생계형 대출이 늘어나는가 하면 위험도가 높은 저축은행 가계대출은 10조원을 넘어섰다. 가계대출의 위험신호를 보여주는 3개 지표에서 동시에 적신호가 분출되고 잇는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도 "가계의 대출은 경기변동에 따라 부실이 급격히 확대될 우려가 있다"면서 "신용대출 등 생계형 대출 증가율이 높은 기관을 중심으로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정금리대출 비중, 7개월 만에 감소=금융감독당국은 가계의 대출구조를 고정금리대출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을 해왔다. 잔액 기준으로 변동금리대출 비중은 여전히 90%가 넘는데 경기가 침체될 경우 금리부담이 높아져 가계부채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국은 가계의 고정금리대출 비중을 30%까지 높이는 게 그나마 적정하다고 판단, 시중은행들을 독려했다. 결국 시중은행들은 기존의 상식을 깨고 이율이 변동금리보다 더 낮은 고정금리대출 상품을 내놓았다. 고정금리대출 비중을 늘리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 지난해 6월 관련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 11%대에 그쳤던 고정금리대출 비중은 7월부터 빠른 속도로 늘기 시작해 11월에는 30.9%를 기록했다. 5개월 새 비중이 3배나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12월에는 고정금리대출 비중이 1.1%포인트 떨어진 29.8%로 줄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경기상황이 좋지 않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더 많다고 분석되면서 변동금리대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축은행 가계대출 10조원 돌파…월별 대출금액 은행 추월=은행들이 가계대출 심사를 엄격히 하면서 제1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세는 주춤하다. 11월에는 1조4,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은행을 제외한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세는 여전하다. 11월만 놓고 볼 때 이들 기관의 가계대출은 2조3,000억원이 늘어 은행을 추월했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은행의 가계대출이 막히자 풍선효과로 인해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최근 1년 업권별 평균 증가율은 0.5~1%인 반면 저축은행의 증가율은 2%에 달한다. 지난해 10월 이후 상호금융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1.3% 수준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저축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가계대출 잔액이 사상 처음 10조원을 넘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 2009년 10월까지만 해도 7조원에 못 미치던 잔액이 2년 만에 3조원 넘게 늘어난 것이다.
가계대출의 질도 좋지 않다. 시중은행장들도 최근 한국은행 총재와의 만남에서 "다중채무자 증가, 생계비 목적 대출비중 상승, 저신용자의 제2금융권 차입 증대 등으로 가계부채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예컨대 마이너스통장이나 신용대출 등이 포함돼 있는 기타대출은 은행권의 경우 11월에 3,000억원 늘어난 데 반해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은 1조5,000억원 증가했다.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을 통한 생계형 대출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가계의 빚 상환능력도 좋지 않다. 대표적인 게 카드의 연체율이다. 지난해 1~10월의 카드대출 연체율은 1.8%(10월 2.1%)에 달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의 연체율(0.7%)의 두 배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저축은행의 주요 고객은 대체로 낮은 신용자가 많은데 이들의 생계형 대출이 늘었다는 것 자체가 채무불이행 위험이 커졌음을 의미한다"며 "다중채무자가 많아 제2금융권 연쇄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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