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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두나라 이야기
입력1999-09-26 00:00:00
수정
1999.09.26 00:00:00
『어느 한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다른 나라도 알아 비교해봐야 한다.』이런 관점에서 나는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보고 싶다. 두 나라는 90년대 들어 똑같이 불경기라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 양국을 함께 연구해보면 각국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전후 일본의 경제기적은 한국의 현대화 도약기보다 훨씬 앞섰다. 한국인들은 역사적인 경험 탓에 이웃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이 일본의 개발전략을 그대로 모방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민간 부문은 자발적이든, 강요에 의한 것이든 19세기 중반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형성된 일본의 성장 패턴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일 두 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관료와 기업인간의 결탁관계가 성장의 주요 패턴과 구조로 자리잡고 있다. 양국의 거대 독점기업(재벌 및 게이레츠)과 주요은행들은 수출지향적인 제조업의 성장을 주도해왔다.
개발연대의 초기나 도약기에는 정부와 기업인들의 이같은 결탁관계가 생산과정에 순기능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나중에 아시아의 임금수준이 유럽 및 북미의 실질임금에 육박하자 무역자유화 및 경쟁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90년대 일본의 경기침체는 해외요인 때문이 아니라 자국 내 부동산 및 주식시장의 투기적인 버블(거품) 현상에서 빚어진 것이다. 이같은 버블의 붕괴와 일본은행 및 대장성의 소극적인 자세가 바로 장기간의 경기침체를 촉발시킨 셈이다.
미국과 유럽이 걸프전의 불황에서 단기간에 벗어난 반면 일본의 은행과 보험사·증권회사·기업들은 오히려 도산의 늪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다.
한국은 97년 이전까지만 해도 유례없는 금융 호경기를 겪었다. 아직도 선진국을 따라잡을 만한 충분한 성장여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일본이 여전히 신용공여국으로 남아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정치인이나 은행들은 기업들을 부추겨 과도한 단기대출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출자금은 뇌물제공이나 판단착오의 투자 프로젝트에 헛되이 쏟아부었다.
한국의 수많은 재벌들은 금융여건이 악화되면 될수록 위험을 수반한 사업에 무모하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은 과도한 부채더미 위에서 진행됐다.
한국이 불가피하게 패닉과 금융붕괴를 맞은 것은 타이가 몰락하고 다른 아시아 신흥시장의 버블이 붕괴된 탓이었다. 일본의 붕괴는 자초한 것이고 한국의 충격은 다른 아시아 국가로부터 몰아닥친 것이다.
그러나 IMF 지원과 채권단의 단기대출 만기연장 등 일시적인 지원책에 힘입어 지난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올들어 플러스로 돌아섰다. 서울의 주가도 상당 수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방만한 은행 및 비대한 재벌의 구조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행이 제로 금리정책과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일본경제가 장차 회복세를 보일 수 있을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국민들은 소비를 꺼리고 있으며 GDP의 8%에 이르는 재정적자는 회복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미래는 외견상 보다 낙관적이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높다. 올해는 물론 21세기에도 5%의 실질성장률을 달성할 전망이다.
최근 한국의 가파른 성장세는 지난해 급격하게 붕괴된 생산기반이 복구되면서 손쉽게 얻어진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지난해 만기를 연장한 단기부채에 대해 대출기관이 완전한 변제를 요구하는 날이 앞당겨지면 또다른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도 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기존의 부채부담을 떠안지 않으면서 수익을 낼 만한 한국의 쓸모있는 자산을 싼값에 사들이려 애쓰고 있다.
현재로서는 일본에서 사회불안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의 경우 낙관론이 비관론으로 변한다 해도 마찬가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경제학자인 나는 한국의 정치나 사회심리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같은 중요한 질문에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올해부터 2003년까지 성장하자면 무엇보다 유럽과 북미경제가 건전한 상승세를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 미 월가의 급격한 증시조정은 곧바로 전세계적인 범위의 자산가치 붕괴를 초래할 것이고 이는 한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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