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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올 추석은 추억도 죄스럽다
입력1998-10-01 17:40:00
수정
2002.10.21 23:09:30
金仁淑(소설가)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명절은 즐겁다. 세뱃돈을 두둑히 챙길 수 있는 설날만은 못하더라도 새옷을 얻어입을 수 있고 맛난 것을 실컷 먹을 수 있으며 학교까지 안가는 추석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명절임은 분명하다. 추석 전날밤이면, 송편을 다 빚어놓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하시던 일이 한복에 새 동정을 다는 것이었다. 당신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의 어린아이였던 내 것까지, 그 손바닥만한 한복에 눈썹같은 동정을 새 실로 바느질하시는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깜빡 잠들곤 하는 나는 이튿날 아침이면 반드시 깨송편을 찾아먹으리라 입맛을 다신다. 그땐 깨가 그렇게 비싼 것이었을까? 어른들 몰래 슬몃 배를 갈라보면서까지 깨를 속으로 넣은 송편을 찾아보지만 열에 아홉은 팥이나 콩 송편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려서부터 갖은 제사와 차례는 다 지내보았지만, 망자인 아버지께 드렸던 상이 물려질 때마다 어린 나를 가장 들뜨게 했던 것은 곧 내 입으로도 들어오게 될 쇠고기 산적에 대한 기다림이었다. 쇠고기라는 건, 생일 미역국 속이 아니면 명절 때에나 겨우 맛볼 수 있었던 시절, 두툼한 통고기를 살짝 다져서 구운 산적은 별미도 그렇게 별미일 수가 없었다.
차례상이 물려지면 어머니는 상에 올려졌던 산적을 토막토막 썰어 어른들의 상에 올린다. 그러나 아이들까지 양껏 먹을 수 있을만큼 충분한 양일 리가 없었다. 고기를 써는 어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겨우 한 두점을 얻어먹기도 하고, 막내라고 귀여워하시던 어른의 무릎에서, 다른 형제들의 부러움을 사가며 산적접시로만 젖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눈물겹게 맛이 있었다. 일년 내내 그것만 먹고 살았으면 싶었을 만큼.
고기라는 게 지천으로 흔해진 요즘, 차례상에 올려지는 산적은 뻑뻑하고 맛없는 음식 중의 하나다. 일부러라면 굳이 그렇게 만들어먹지 않으리라. 그런데도 그 음식에는 단지 그 음식의 맛이 아닌 추억과 그리움의 맛이 있다. 모든 게 귀하던 시절, 생활보다는 생존이 더 무거웠던 시절의 추억이다. 그러나 때론 추억도 죄가 되는 기분일 때가 있다.
쇠고기값이 바닥까지 떨어져있는 요즘, 양손으로 들어야할 만큼 이 용도 저 용도의 쇠고기를 사들고 정육점을 나오면서도, 가슴이 뿌듯하기는 커녕 공연히 송구스러운 기분이 든다. 올해 추석이 어느 집엔들 풍요롭고 넉넉하랴만, 특히나 소 키우는 집의 추석은 힘겹고 가난할 터이다. 올해에는 한가위 보름달이 그 넉넉한 불빛으로 위로해주어야할 집들이 너무도 많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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