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17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은 국가 경제에서 과학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번 기회에 5% 이상의 R&D 예산 비중을 법제화하고 R&D 예산을 매년 10% 이상 지속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박상대(76ㆍ사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은 지난해 12월28일 서울 역삼동 과총에서 열린 서울경제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민생정부가 선보이는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미래창조과학부의 '미래'란 사실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낼 기획 기능이 들어간다는 의미로 생각된다"며 "국가발전 정책의 중심에 과학을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부터 시작됐다. 박 회장은 현 정부 과학 정책에 대해 ▦기초연구단 사업 추진 ▦R&D 투자 확대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 상설화 등을 중요 성과로 꼽았다. 반면 과학기술 전담부처 폐지는 다소 아쉬웠다고 했다.
박 회장은 "기초연 사업과 국과위 상설화는 정말 잘한 일"이라며 "R&D 투자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박 회장은 "지금까지 원천기술이 없어 외국에 매번 로열티를 냈었는데 이에 대한 투자가 확대된 게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박 회장이 설명한 기초연구단 사업은 기초연(IBS)이 선정한 연구단에 매년 100억원의 연구비를 최대 10년간 지원하는 것으로 2011년 수립된 '과학벨트 기본계획'과 '기초과학연구원 설립ㆍ운영 기본계획'에 따른 것이다. 선정된 연구단의 연구단장은 연구단 구성과 평가 등 외부 간섭 없이 전권을 갖고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한다. 올해 6월까지 50개 중 25개 내외 연구단이 선정돼 연구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초연구단 사업이 그동안의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기초과학 육성의 디딤돌이 될 것이 확실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R&D 투자확대에 대해서도 박 회장은 매우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그는 "지난 5년간 우리나라 R&D 예산 연평균 증가율은 세계 2위"라며 "지난 2008년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3.36%에서 2011년 4.03%로 상승했고 전체 정부 R&D 예산도 11조 1,000억원에서 2012년 16조4,000억원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정부 R&D 중 기초연구 비중도 25.6%에서 2012년 35%로 높아졌다.
박 회장은 다만 "총액 측면에서는 미국의 10분의1, 일본의 7분의1 정도로 전체 금액 면에서 차이는 있다"며 "앞으로 R&D 예산 비율을 5% 이상으로 법제화하고 10%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박 당선인이 창조경제론을 설명하면서 GDP 대비 R&D 비율을 2017년 5% 수준으로 확대하고 기초연구 지원 비중도 같은 기간 4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과 연결된다.
R&D를 언급하면서 박 회장은 기초과학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세계 일류를 달성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바로 그 예입니다. 이제는 그런 여력을 바탕으로 기초과학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초과학은 투자 비용이 큰 대신 투자에 따른 결과물은 이른 시간 내에 얻을 수 없는 탓에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초과학은 원천기술 개발과 직결되는 것으로 수출산업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길입니다."
박 회장은 과학기술 전담부처가 현 정부 들어 없어진 것을 가장 아쉬운 대목이라고 전하면서 민생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에 상당한 기대감을 보였다. 과거 과학부총리가 있었고 전담부처가 과학정책을 총괄했던 시대에 비춰 현 정부 들어 전담부처가 사라져 일관성 있는 과학정책 추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그동안 과학계에서 많이 제기돼왔다. 아직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지 않아 구체적인 내용을 점칠 수 없지만 중ㆍ장기 과학정책 수립은 물론 안정적인 R&D 투자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 회장은 "박 당선인은 과학기술 분야 출신으로 과학계와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며 "미래 성장동력을 이끌 새로운 분야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현실화될 것이며 이를 실현할 조직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해 "현재 교육과학기술부의 과학기술 부분과 지식경제부의 연구개발, 국과위 장기발전계획의 예산배분 기능이 합쳐지는 형태가 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예산 배분의 경우 그는 "R&D를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우리가 앞으로 어떤 분야를 개발해나가야 하는가를 파악한 뒤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도 단순하게 과학부처 부활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앞으로 20년 또 30년 후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부터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이라는 공약이 나왔을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바이오나 로봇 등 미래산업에 적극적 지원과 이를 실행하는 상당히 새로운 조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또 하나의 공룡부처가 나오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는 데 대해 박 회장은 "그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라며 "대략 19개 부처 정도가 새 정부 조직으로 예상되는데 부처별로 역할이 있기 때문에 특정 부처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투자는 많이 했는데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일부의 비판에 박 회장은 정색하며 과학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구 과정에서 생긴 작은 결과가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하지 않은 것이어서 주목을 받고 이 결과가 여러 검증 단계를 거쳐 입증되면 받는 게 노벨상이죠. 일본과 많이 비교를 하는데 일본의 기초과학은 우리보다 80년 정도 앞서 있습니다."
박 회장은 "충분한 투자를 바탕으로 연구 여건을 마련해놓은 다음 우수한 인력으로 연구진을 꾸리고 그 다음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여유를 갖고 창조적 연구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 인내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과주의에 매몰돼 투자 후에 바로 결과물을 바라는 방식으로는 노벨상과 같은 큰 연구업적을 바탕으로 하는 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로호(KSLV-1) 발사 연기와 북한의 은하3호 발사 성공을 계기로 우주산업 경쟁력 확보 목소리가 높은 데 대해 박 회장은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그동안 안보상의 이유로 약간 발전이 더뎠던 것이 사실이지만 위성 개발 기술 등에서는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며 "무엇보다 우주산업 연구개발은 정부의 정책 비전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가 중요하다.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장기적 계획 아래에 집중적 투자가 이뤄져야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신재생에너지가 많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안전성 담보를 바탕으로 원자력 산업을 더 키워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 회장은 최근 원전 부품 논란을 언급하고 "우선 부품 납품 과정을 투명화하고 사용 후 핵 폐기물 문제 해결책도 합리적으로 마련하는 등 안전성에 대한 믿음을 국민들에게 줘야 한다"며 "식량 안보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안보도 국가 존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에너지를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원전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총선에서 과학기술인이 대거 국회에 입성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당초 국회의원의 20%(60명) 과학기술인 진입을 목표로 했지만 44명의 친과학기술인이 입법기관에 진출했다. 박 회장은 "비록 목표 달성을 못했지만 44명도 대단한 숫자"라며 "과학자는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인 만큼 국정과 의정 중심에 과학기술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적으로 좋은 정책이 쏟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가경쟁력 11위에 오른 데 대해 경제를 잘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큰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묵묵히 뒤에서 열심히 일해온 과학기술인 덕이 큽니다. 그동안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일만 하다 보니 전담부처가 없어지는 불이익을 당하고는 했습니다. 이제는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국가발전의 토대를 과학자들이 닦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박상대 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