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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사태] 금융위기국에 '환란재연' 경고

【뉴욕=김인영 특파원】 95년 1월 멕시코 페소화 위기, 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 98년 8월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 99년 1월 브라질 레알화 절하….멕시코 위기가 터지자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은 「21세기형 공황」이라고 표현했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만들어낸 공황은 세기말을 앞두고 빠른 속도로, 더 큰 규모로 확산되고 있다. 레알화 절하가 단행되자 아르헨티나(10.24%), 페루(5.45%), 멕시코(4.60%) 등 중남미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고, 이를 배후 시장으로 하는 미국 경제도 긴장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위기때 처음엔 관망적인 자세였다가 나중에 일본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뒷마당인 브라질에서 위기가 발생하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자동차에 잔고장」이 난 정도에 불과하다고 여유를 부렸지만, 브라질 사태가 터지자 즉각 깊은 관심을 보였다. 미 재무부는 선진 7개국(G7)과 공동 대응을 통해 브라질에 대한 추가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미셸 캉드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즉각 당사자들과 긴밀한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질 위기가 아시아에 미칠 영향은 긍정론과 부정론으로 엇갈린다. 긍정적 측면은 중남미에 불안을 느낀 국제 투자자들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아시아로 몰려올 가능성이다. 95~96년에 동아시아에 과잉 유동성이 집중된 것은 멕시코 위기로 중남미 전체가 흔들리자 이머징 마켓 자금이 아시아로 대거 이동해 왔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위기때 빠져나갔던 자금은 다시 중남미로 옮겨졌는데 이 자금이 다시 아시아로 환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레알화 절하가 선언된 날 뉴욕 증시의 중남미 주식(ADR)이 일제히 폭락했지만 아시아 주가는 안정세를 유지한 것이 이를 반영한다. 한전 DR은 오히려 4.4% 올랐고, SK 텔레콤 주도 0.63% 상승, 브라질 사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워싱턴의 경제예측기관인 S&P DRI의 분석가 나리먼 베라베시씨는 『브라질 사태로 아시아가 충격을 받겠지만, 단기적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정적 측면은 이머징 마켓 채권물이 동시에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식시장과 달리 채권시장은 글로벌 단일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데, 한국물 금리는 이날 뉴욕에서 0.5~0.7% 포인트 급등했다. 이머징 마켓이 다시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자 국제 투기꾼들이 준동할 여지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광동투자신탁(GITIC) 파산에 따른 채무 변제를 외국인에게 해주지 않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홍콩을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투기자들의 다음 공격목표가 홍콩 달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질 위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금융 위기를 경험한 나라에 제2, 제3의 외환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는 위기재발 가능성 정치 불안이 경제 위기를 조장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 인위적인 거시정책 운영에 한계가 있다는 점 등이다. 브라질은 지난 87년 치욕적인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했고, 95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에 따른 도미노 현상으로 흔들렸었다. 이어 97~98년 아시아 및 러시아 위기로 인한 이머징 마켓 붕괴로 타격을 입어 마침내 평가절하라는 극약처방을 단행했다. 페르디난도 카르도수 대통령의 집권 초기인 93~94년 브라질은 연간 2,000%에 이르는 가히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한때 좌익 운동가였던 카르도수 대통령은 집권후 자신의 이론을 포기하고 미국식 개방경제를 채택함과 아울러 레알화를 달러에 고정시켜 물가를 안정시키는 이른바 「레알 개혁」을 단행했다. 그런데 이것이 또다른 문제를 노출했다. 레알화 고평가는 물가를 안정시켰지만, 통화 방어에 따른 막대한 보유외환 낭비를 초래했고, 30%를 넘는 치명적인 이자율을 유지해야 했다. 레알화 평가절하는 시간의 문제였다. 지난해 10월 하루에 외국인 투자자금이 10억 달러씩 빠져나갔지만, 800억 달러나 되는 든든한 외환보유고로 이를 버텨냈고, 곧이어 IMF가 41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함으로써 연명됐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외환보유액은 4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따라서 환율변동폭(밴드) 확대를 통해 사실상 평가절하를 단행함으로써 파국을 피하자는 것이 브라질의 목표다. 레알화는 이날 8% 절하됐지만, 전문가들은 추가 절하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레알화 절하가 충분치 않다』며 『20~30%는 절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알화가 절하되면 브라질은 다시 물가가 앙등하고, 고금리-고물가-저성장의 악순환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과 국민, 기업이 모두 합심, 경제난을 이겨나가야 할때 브라질 의회와 주정부 지도자들은 권력투쟁만 일삼고 있다. 위기 수습이냐, 확산이냐의 관건은 선진국들의 지원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 내부의 단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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