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기업은행은 주당 410원씩 2,640억원을 배당했다. 배당성향(배당금/당기순이익)만 20.5%에 달했다. 반면 민간 금융사인 하나금융은 14.5%에 그쳤고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인 우리금융도 16.9% 수준이었다.
배당성향이 높다는 것은 벌어들인 것에 비해 주주에게 나간 배당금이 많다는 뜻이다. KB(46.6%)와 신한금융(24.6%)은 기업은행보다 배당성향이 높지만 KB는 실제 배당금액이 411억원으로 기업은행의 15%에 불과하다.
웬만한 금융지주사보다 기업은행이 많은 금액을 배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 돈의 대부분은 대주주인 정부(지분 68.6%)로 흘러들어갔다. 2011년에도 기업은행은 1조5,000억원 안팎의 순익을 낼 것으로 전망돼 상당 수준의 배당금을 정부가 챙길 가능성이 높다.
당국이 앞에서는 "고배당을 자제하라"며 금융사를 압박하지만 뒤에서는 기업은행에서 배당을 꼬박꼬박 챙겨가고 있는 셈이다.
◇이율 배반…곶감 빼먹는 정부=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지난 10일 2011 회계연도 결산에 따른 배당계획을 재정부에 보고했다. 이 안에는 정확한 배당수치가 아닌 배당성향에 따른 배당금액 등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배당성향을 15%로 했을 때의 정부의 배당금, 20%로 할 경우의 금액 등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기업은행의 핵심관계자는 "정부가 세수 문제로 올해도 예년 수준의 배당을 원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8년을 제외하고 기업은행은 매년 20% 이상의 배당성향을 기록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당국이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 기업은행은 과거에도 타금융지주보다 높은 배당성향을 나타냈다. 기업은행은 금융위기 여파가 가라앉지 않았던 2009년에도 1,540억원을 주주에게 나눠줬다. 배당성향이 21.7%였다. 2009년의 경우 신한(32.47%)과 하나(27.3%)가 기업은행보다 배당성향이 높았지만 KB(14.6%), 우리(7.9%) 등은 기업은행보다 낮았다. 기업은행은 2006년과 2007년에도 하나금융보다 배당성향이 높았다. 작년만 해도 전체 공공기관 배당금의 약 45%를 기업은행이 했다.
금융지주사의 고위관계자는 "국책은행이기는 하지만 기업은행에서는 꾸준히 배당을 챙겨가고 일반 금융사에 고배당을 자제하라고 하면 앞뒤가 맞느냐"고 밝혔다.
◇저질 체력 만드는 정부…대출 위해서도 배당 자제 필요=높은 수준의 배당은 금융사의 체력저하로 이어진다. 은행은 배당을 적게 하고 내부유보를 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여야 위기대응력이 커지고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
기업은행의 경우 정부가 창고의 곶감 빼먹듯 순익을 가져가다 보니 BIS 비율과 Tier1 비율이 타금융사보다 낮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기업은행은 BIS 비율이 11.6%로 국민 14.5%, 우리 14.3%, 신한 15.6%, 하나 13.7% 등에 비해 낮다. Tier1 비율도 기업은행은 8.94%로 최소 10%가 넘는 다른 은행과 비교된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위기 때마다 기업은행에 유상증자를 해주기는 하지만 향후 은행의 안전성과 성장성을 감안하면 배당비율을 적당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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