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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현 삼성전자 디자인실장(특별기고)
입력1997-02-18 00:00:00
수정
1997.02.18 00:00:00
정국현 기자
◎물건 만들때 「기업철학」 가져야/고유의 디자인이 승패결정 인식필요물건을 만들때는 반드시 기업마다 철학이 있어야 한다.
광고만 멀리서 보아도, 세계 어디서 보아도 『아, 제품은 삼성켐코더, LG TV 대우자동차』라는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전자 자동차 의류업계는 독창적인 아이덴티티를 따질 여력이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을 낭비했고 전문인력을 양성하지도 안았다. 디자인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70년대는 텔레비젼, 자동차, 옷 어느 것 하나 촌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TV를 켜 화면이 나오고, 자동차 엔진시동을 걸면 굴러가고, 옷을 걸쳐 따뜻하거나 시원하면 그만이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시골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의식이 지배했다. 디자인이란 백지위에 물감칠하는 그림연습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기술자립이라는 절대절명의 과제속에 부품 하나하나를 국산화하고 태평양을 건너는 사이 포장이 엉성해 부품 납땜이 뭉게지지 않도록 하는 품질개선에 주력했다.
가뜩이나 비싼 외화때문에 부품을 들여오는 것은 일본사람 장사시켜주는 것이었고 품질이 나쁘면 그 넓은 태평양을 되돌아와야 하니 원가는 고사하고 12시간 일을 24시간 하고서도 본전마저 날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90년대 우리사회는 수출 1천억달러 개인소득 1만달러 돌파와 함께 선진의 대열에서 세계화를 외치며 세계를 보고 다른 세계를 직접 체험해보기도 했다.
외부세계 관찰은 문화에 대한 인식도 심어주어지만 한편으로 눈에 띄는 모든 것은 곧바로 시각적인 차이, 미적인 차이를 우리에게 인식하게 하는 전에 없었던 신선한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다름아닌 디자인적 요소였다.
디자인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된 우리기업인들, 과거 종이에 물감질이나 하고 있었던 디자이너들은 종이대신 CAD/CAM, 시뮬테이션이라는 디자인 신도약대에 곧바로 자의반타의반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디자인을 둘러싼 국내외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우리기업들엔 디자인부서가 생산과 영업의 눈치를 보는가 하면 디자인이 기획과 개발이 다된뒤에 시작되는 웃지 못할 역프로세스과정이 존재했다. 디자인연구인력도 선진업체는 물론 개도국에도 밀리고 있다.
또 트렌드 예측은 개발담당자가, 분석은 기획담당자가 하니 개발이 잘되고, 기획이 뛰어나고 품질이 좋아도 런던이나 뉴욕거리에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간혹 눈에 들어오면 진열대의 밑바닥에 쳐박혀 있는 원통한 꼴을 당해야 했다. 이러한 주원인은 자기다움의 개성연출이 없고, 디자인의 필수전제조건인 제품군별 피밀리화, 시리즈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통이 없는 잡종디자인이다보니 영원한 고객은 물론 항상 애착을 갖는 고객도 없다.
전자산업의 디자인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팔 제품은 미국인의 시각으로, 현지에서 디자인하는 디자인의 현지화가 필수적이다. 또 디자인관련 인프라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디자인의 인프라구축은 부족한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10배, 1백배 보완할 수 있는 경쟁력확보의 지름길이다. 전자업계는 디자인 자체가 기업생존을 결정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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