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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입력1998-10-28 19:02:00
수정
2002.10.21 23:09:47
崔 禹錫(삼성경제연구소 소장)
최근 들어 아는 분들 중에 일 당한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세기말의 격변기라는 점도 있겠지만 직접적으로는 정권교체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유탄맞는 분들도 많다. 어떤 분은 감옥에 가고 어떤 분은 수사를 받고, 어떤 분은 기약없이 해외로 떠나고, 또 어떤 분은 공직에서 중도하차하여 망각 속으로 들어가고…. 정말 『우리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라는 그림 제목이 자꾸 연상된다.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신문사 생활을 한 때문에 개발 년대에 경제관계 일을 한 분들과 접촉이 잦았다. 그분들의 행적을 보면 정말 기복이 심해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실감난다. 한때 잘 나가던 분이 이상한 바람에 휘말려 엉뚱한 인생행로를 걷는가 하면 어떤 분은 초년엔 눈에 띄지 않다가 어느날 갑자기 상승세를 타기도 한다. 또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큼 대단했던 분이 하루아침에 바닥신세가 되기도 하고, 또 한동안 잊혀졌던 분이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오듯 화려하게 재등장한 경우도 있다. 또 감옥에 간 분도 많은데 실정법 위반을 했을지 모르나 그 사정은 충분히 짐작되고 또 인간적으로도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분들이 많다.
지금의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를 산 분들이다. 경제개발 년대를 담당했던 세대들로서 정말 초년엔 고생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했다. 또 놀기도 잘 놀았다. 자주 못 보더라도 더러 관혼상제때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대부분 흰머리에 주름많은 점잖은 얼굴들인데 옛날 젊었을 때의 팔팔하던 모습들과 오버랩되어 속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지금은 높은 자리에 엄숙한 얼굴로 앉아 있지만 옛날 젊었을 땐 장관에게 칭찬받아 싱글벙글하거나 승진에서 탈락되어 풀이 죽어 있거나 심지어 사무실에서 상사 눈을 피해 포커하는 모습까지 많이 봤다.
그래도 좌우간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만나는데 유명을 달리한 분들이 아쉽다. 15년전 아웅산 사건때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더니 얼마전 자동차 사고로 또 많은 분들이 갔다. 박필수(朴弼秀)전 상공부장관은 60년대 중반 경제기획원 사무관 할 때 처음 봤는데 그때부터 무척 일에 열심이었다. 주로 대외적인 일을 맡아 처음엔 미 원조기관(USOM)과의 교섭을 많이 했고 월남특수(越南特需)땐 한푼이라도 더 많이 월남파병 대가를 받으려고 미국쪽과 끈질기게 싸웠다. 그후 상공부로 옮겨서도 대외관계 일을 했다. 71년 한미섬유교섭땐 담당국장으로서 미국 대표와 위스키를 맥주컵으로 마셔가며 교섭을 벌였다. 그땐 외국에서 사절단이 오면 술집에 가서 일단 위스키로 기를 꺾어 놓았는데 처음엔 사업전망이 나쁘니 재무구조가 나쁘니 하여 까다롭게 굴다가도 한번 기가 꺾이면 그뒤는 아주 순조롭게 일이 풀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 등 주요 프로젝트의 차관교섭이 대개 그런 과정을 겪었다.
박 전장관과 같이 개발 년대 수출입국의 주역들은 정말 물불가리지 않고 몸바쳐 일들을 했다. 그런 좋은 경험과 원숙한 경륜을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 펴보지도 못하고 간 것이 안타깝다. 무슨 파란을 겪든,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데 하나둘씩 유명을 달리하니 세월의 덧없음을 탓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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