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나라의 황제였던 문제(文帝, 기원전 180~157년 재위)는 흉노가 침입하자 세명의 장수를 보내 수도의 북ㆍ동ㆍ서 세 방면을 각각 지키게 했다.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주둔지 시찰을 나갔던 문제는 서군 진영에서 황제의 체면을 구기고 만다. 황제 사신이 서군 진영 입구에서 천자께서 오셨다고 소리치자 서군 군사들은 "우리 장군께서 명하길 군대에서는 장군의 명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며 길을 터주지 않았다. 당시 서군 대장은 조후(條候). 문제는 하는 수 없이 조후에게 사신을 보낸 뒤 군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서군 성문에 도착하니 성문을 지키는 대장이 "장군께서 군중 안에 가마를 못들이게 했다"며 길을 막는다. 묵묵히 가마에서 내려 군영 안에 들어간 문제에게 조후는 무기를 든 채 인사를 올린다. "전쟁 중에 있는 몸이라 엎드려 절을 올리지 못하니 양해하십시오." 여느 왕 같았으면 노발대발 당장 조후의 목을 쳤겠지만 문제는 "참으로 진정한 장수로다"라며 그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중국 고대 역사서 '사기(史記)'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사기' 전문가로 통하는 김영수는 리더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권한의 위임을 꼽고 있다. 전쟁이라는 비상시에 장수의 군권 장악 여부는 나라의 운명과 직결된다. 저자는 "군권의 실질은 최고 통치자가 기꺼이 군권을 장수에게 위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석한다. 군사 문제 만이 아니다. 기업 현장의 리더도 마찬가지. 저자는 "혼자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 없다면 권한을 참모나 전문가에게 완전 위임해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게 옳다"는 충고를 던진다. 세계 최고의 역사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사기.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걸쳐 살았던 서한(西漢) 시대의 사관 사마천이 전설의 시대 삼황오제(三皇五帝)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한나라 황제 무제(武帝)에 이르기까지 약 3,000년간의 중국 역사를 다뤘다. 130권에 이를 정도의 방대한 두께 탓에 좀처럼 독파하기 쉽지 않다. 20년간 사기만을 연구하며 '지혜로 읽는 사기''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등을 쓴 역사학자 김영수는 사마천의 이야기 보따리에서 이번에는 인간 관계와 처세의 지혜를 뽑아냈다.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의 재상 맹상군은 자신을 찾아 오는 식객들을 제 몸처럼 대접했다. 식객이 올 때마다 그를 맞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병풍 뒤에서 비서가 그 대화 내용을 듣고 손님 가족 사항을 기록했다가 식객이 작별 인사를 고하기 전에 사람을 보내 가족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관직에서 쫓겨나자 그를 멀리했던 식객에게도 이전처럼 대우해줬다. 저자는 인재를 얻으려면 맹상군처럼 조건 없이 대우하라고 조언한다. 사기의 분량이 워낙 방대해 그 속에서 뽑아낸 처세의 지혜들도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저자는 '인재를 대접하는 지혜의 인간 경영''기회를 간파하는 직관의 인간 경영''조직에서 살아 남는 승리의 인간 경영''사람을 단숨에 사로잡는 유혹의 인간 경영''참모를 활용하는 실천적 인간경영' 등 10개의 주제로 압축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는 진시황에 이어 중국 천하통일에 성공한 유방의 성공 비결을 자신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장량, 한신, 소하 등 각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을 기용하고 끝까지 존중했던 덕택이라고 분석한다.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고대 중국 통치자들은 어떤 자질들을 키웠을까. 저자는 덕과 식견, 카리스마, 권한 위임을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꼽았다. 고전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쉽게 읽힐 수 있는 재미를 갖췄다. 방대한 역사서에서 우리 실생활에 유용한 지혜를 간명하게 뽑아낸 저자의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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