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금리 자유화의 단계를 밟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민은행의 대출금리 하한선 철폐를 이렇게 평가했다. 성장률 둔화 속에 금융개혁 과제를 완성하려는 리코노믹스의 의지에 따라 올해 안에 금리 자유화가 시행될 것이라는 관측은 나왔지만 당장 20일부터 대출금리 하한선을 철폐한다는 인민은행의 발표는 시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경제체질 개선'을 강조하는 리커창 총리 취임 이후 첫 금융개혁의 구체안이라는 점도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인민은행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금융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인민은행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차별화와 서비스 경쟁을 촉진시키는 한편 기업들의 조달비용을 낮출 것"이라며 "금융이 실물경제 구조조정과 개혁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싱크탱크인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의 왕준 이코노미스트는 "대출 하한선 철폐는 금융개혁의 거대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단계적 인하가 아니라 한꺼번에 없앴다는 것은 향후 금융개혁의 강도와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고 평가했다.
외신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로이터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중국 경제의 개혁을 단행하겠다고 천명한 리 총리가 집권 4개월 만에 중대한 첫발을 내디뎠다"고 진단했다. 마크 윌리엄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아시아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금융 부문이 정부가 아닌 시장 주도로 움직이게 된다는 뜻으로 중대한 발전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민은행의 전격적인 대출 하한선 폐지는 실물경제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점도 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그림자금융 등의 영향으로 발생한 은행의 신용경색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실물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출이자율을 낮춰 경쟁력 있는 기업을 선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실제 리 총리는 최근 "경쟁력 있는 기업에는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의 2ㆍ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동기 대비 7.5%로 2분기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BOA메릴린치 등 일부 투자은행들은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998년 이후 처음 정부 목표치에 미달할 뿐만 아니라 7%대 초반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내놓고 있다. 17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이 경제개혁을 게을리할 경우 오는 2018년 경제성장률이 4%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WSJ는 중국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고 대출금리 하한선 폐지 카드를 꺼낸 것을 두고 전면적인 경기부양보다 금융개혁과 미세 정책조정을 동시에 실시했다고 분석했다. 경기부양 카드를 꺼내 들었을 경우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추가 상승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대출금리 자율화 카드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예금금리 자유화 시기를 주목하고 있다. 기준금리의 110%로 설정된 예금금리 상한선을 자유화할 경우 중국 금융개혁은 한층 속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대출금리 자유화가 금융개혁과 경기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시중금리 폭등 사례에서 봤듯이 금융기관 전체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대출금리를 자유화해봤자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은 크게 낮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윌리엄스 이코노미스트는 "이론적으로는 대출금리 하한선 철폐로 은행들이 더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출해줄 수 있지만 당장 이에 따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대출금리 자유화를 두고 중국의 4대 시중은행(공상은행ㆍ건설은행ㆍ중국은행ㆍ농업은행)은 반발해왔다고 19일 로이터가 전했다. 인민은행의 대출금리 하한선을 핑계로 이들 은행은 높은 이윤을 낼 수 있었지만 이것이 철폐되면 이윤이 감소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금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려면 자유화가 필수적이라고 봤고 결국 4대 은행의 양보로 이번 개혁조치가 단행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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