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처 5급 사무관 이모씨는 요즘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있다. 200만원대의 월급을 받아온 그의 생활비는 지난해 말부터 매달 90만원가량 늘었다. 매주 수도권과 세종시를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해야 했던 탓이다. 그가 소속된 부처는 지난해 말 세종시로 이주했다. 배우자는 직장 등의 문제로 수도권에 남고 그만 대전 인근에 월세를 얻어 살며 주중 홀아비로 지내고 있다. 중앙공무원 특유의 과중한 업무량은 줄지 않았는데 생활비가 늘어 실질소득은 3분의1 가까이 감소했다.
지방공무원들의 경우 봉급수준은 중앙공무원과 비슷한데 업무부담은 중앙부처보다 대체로 무겁지 않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지방직은 보통 고향 등 기존 생활근거지에서 직장을 얻으니 두 집 살림을 할 이유도 없다. 그만큼 가처분소득은 중앙공무원보다 높다. 이씨와 비슷한 처지인 상당수 중앙공무원들로서는 박탈감이 크다.
이처럼 왜곡된 임금체계는 공직사회의 끊임 없는 부패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대민 서비스나 지역사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지방공무원은 비리 문제의 단골 표적이 돼왔다.
실제로 감사원이 지난해 지자체 종합감사를 실시한 결과 무려 296건에 달하는 위법ㆍ부당사례가 적발됐다. 한 중견 건설업체 최고경영자(CEO)는 "중앙관서만 해도 과거 같지 않은데 지방에서는 아직도 인허가권이 걸린 사업을 하려면 '급행료(인허가를 빨리 내달라는 청탁성 뇌물)'를 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실토했다.
행정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들이 '평균의 함정'에 빠진 공무원 임금체계가 초래한 필연적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더 어렵고 많은 업무를 처리해도, 더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해도 계급ㆍ호봉이 같으면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는 게 대한민국 공무원의 실상이다. 이런 임금체계하에서라면 굳이 열심히 일할 유인이 사라지고 당연히 국정효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서울경제신문이 18일자부터 시작한 대기획 '국가 시스템을 개조하자'의 첫번째 주제로 공무원 임금체계를 들고 나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현행 공무원 임금 시스템에는 일부 성과급 등이 더해져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반영 정도가 높지 않아 실질 효과가 크지 않다. 행정학자들은 더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더 보람을 느끼도록 공직자 급여체계를 대수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실질월급 하락 방지를 전제로 성과급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직무평가 개선도 수반돼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직적 직위 승진 없이도 일 잘하면 직급ㆍ보상 승격을 인정하는 등 선진체계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기본급 외에 따라붙는 각종 수당구조도 투명화ㆍ간소화하는 보완책이 수반돼야 한다.
이밖에 국민연금보다 높은 공무원연금 수준, 높은 정년 보장성 등에 따른 국민적 정서도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이재호 한국행정연구원 국정관리연구본부장은 "선진사회로 가려면 국민이 공감할 법치사회의 신뢰와 원칙을 사회간접자본으로 확충해야 한다"며 "공무원 처우 역시 국민이 공감할 원칙 아래서 기본급과 인사체계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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