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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추경 빼곤 쓸만한 카드 다 써… 특단대책 없인 효과 "글쎄"

[경제운용 틀 다시 짠다] <br>경기불안에 기업들 선행투자 머뭇… 침체 빠진 내수도 회복속도 더뎌<br>가계빚 부담 완화·중산층 감세 등 소비진작 위한 조치 뒷받침 돼야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이 연초 예상했던 그림에서 벗어나 뭔가 대책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추가경정예산을 당장 편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고 이 때문에 소비와 투자 부문에서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사석이기는 했지만 "공무원들의 골프 해금 조치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그만큼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소비 진작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경기 전망을 기존의 '상저하고'에서 '상저하중'으로 수정하려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과 맞물려 있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3.7%로 내다보며 상저하고 국면을 점친 데는 '상반기 중 경기 전망을 가리는 안개가 걷힐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최근 그리스ㆍ스페인 문제로 재정위기 사태가 다시 꼬여가고 있는데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재부상하고 있다. 이란을 비롯한 주요 산유국의 정전 불안요인도 여전해 유가 불안요인이 상존해 있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줄지 않는 가계부채가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까닭에 내수회복이 더디다. 고용지표가 그나마 선방하고 있지만 제조업 부문만 본다면 여전히 부진하다. 곳곳에는 물가 불안 복병이 도사리고 있고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외 주요 기관들에서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정부의 경기 판단에도 상당한 부담이 더해졌다. 특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0일 올해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기준)을 3.8%에서 3.6%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이 같은 압박은 절정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는 이 같은 대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상저하저'와 같이 경기회복세가 꺾이는 최악의 경기국면이 펼쳐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선 통계적 요인이 작용하게 된다. 지난해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워낙 저조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올해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높게 나올 수밖에 없는 기저효과가 발생한다. 아직은 우리 실물경제의 기초체력이 버틸 만하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수회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국내 재고규모가 1ㆍ4분기에 기대 이상으로 줄었다"며 "세계 경기가 위축됐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올해 1ㆍ4분 수출 실적은 유럽 위기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전인 지난해 1ㆍ4분기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정부는 세계 경기 회복이 늦춰질 경우 우리 경제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반기 경기 흐름을 상저하고에서 상저하중으로 미세조정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상저하중이라는 전망이 무언가 특효약을 내놓기 참으로 애매한 수준이라는 데 있다. 재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경기가 급락한다면 차라리 극약처방이라도 쓸 텐데 지금의 경기 상황은 잠시 잔병을 시름시름 앓는 듯하면서도 건강에는 큰 지장이 없는 듯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경기 흐름이 애매하면 경기 대응책도 갑작스런 방향조정보다는 미시적인 미조정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정부는 하반기에 대규모로 돈을 더 푸는 추가경정예산 편성보다는 규제완화 등을 동원한 투자ㆍ고용ㆍ소비 유인책에 나설 계획이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가 잇달아 규제완화책들을 쏟아낸 바람에 당장 손에 쥔 새로운 정책 카드가 없다는 점이 딜레마다. 경제부처 간부들 사이에서는 "이제 돈 안 쓰고 내놓을 수 있는 경기진작책은 거의 다 내놓은 것 같다"거나 "아이디어가 고갈됐다"는 한숨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최근 투자와 소비를 유인하겠다고 내놓은 규제완화대책들은 이른바 '스몰볼(small ball)' 시리즈도 정부의 아이디어 창고가 바닥나자 전국의 300여개 업종별 단체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머리를 빌려 어렵게 모아낸 아이템들이었다.

그나마 이 같은 대책도 당장 실효를 내기는 어렵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기업들은 경기 불확실성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 선행투자를 머뭇거리고 있고 내수의 중심인 중산층 역시 대출상환과 계속 늘어나는 세부담 등으로 소비는커녕 저축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도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비진작을 위해서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나오거나 중산층 감세조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선거 등에 따른 정책 리스크를 해소해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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