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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년제 대학에 다니는 강윤석(26ㆍ가명)씨는 교양과목을 몇 개 들었다가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할 판이다. 학교가 정한 커리큘럼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예전보다 학기당 들을 수 있는 학점이 줄었고 계절학기도 없어 결국 9번째 학기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경우 글로벌 경영전공을 신설하면서 기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줄였다. 강씨처럼 교양과목에 '한눈을 팔면' 졸업에 애를 먹는 이유다.
기업들은 대학이 제대로 된 인재를 공급하지 못한다고 쓴 소리를 한다. 반면 대학들은 졸업 후 실전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붕어빵'을 강요하는 대학과 기업이 오히려 인재양성을 가로막는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창의성 가로막는 대학=학생들이 대학에 갖는 가장 큰 불만은 원하는 수업을 마음껏 들을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며 창의력을 계발하고픈 학생들이 필수과목의 제약에 가로막히는 것. 애플을 창업한 잡스가 매킨토시를 개발한 배경에는 대학시절 교양수업이 있었다. 그는 오리건주 리드대를 중퇴했지만 그 대신 필수 수업에 대한 제약 없이 '세리프'라는 서체를 배우는 교양 수업에 천착했고 훗날 매킨토시에 처음으로 아름다운 서체를 담아 세상을 매료시켰다.
유명 사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올해 대기업에 입사한 송재민(28ㆍ가명)씨 역시 교양수업의 가치를 뒤늦게 느낀다. 그는 "사회에 나와보니 학교 다닐 때 배운 그리스ㆍ로마역사가 사고력과 이해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준다"면서 "회계과목을 필수로 이수하는 것은 좋지만 그 때문에 다른 교양과목이 줄어든다면 창의성 인재로서의 자질은 부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실무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해 전공 공부가 흔들린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모대학 경영학과 4학년인 이진주(26)씨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회계 과목까지 조 발표 수업을 하는데 그러다 보면 다른 조가 발표하는 몇 주를 나머지 학생들은 흘려보낸다"고 꼬집었다.
◇획일적 만능인재 요구하는 기업=기업 채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대학생 심모(25)씨는 "기업의 채용공고를 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역량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학점ㆍ토익ㆍ컴퓨터ㆍ인턴 등 만능인재를 원하지만 정작 회사에 들어간 선배들은 대부분 단순 전산 업무를 처리한다"고 밝혔다. 그는 "어차피 창의력을 요하는 핵심 업무는 석박사나 해외에서 데려온 소수가 하고 학부 졸업자는 뒷받침만 하는 것 아니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기업이 채용과정에서 실시하는 인성ㆍ적성 시험에 대해 심씨는 "국어 맞춤법, 한자, 수학 등을 묻는데 직장생활에 필요해서인지 지원자를 손쉽게 거르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고시 '낭인'이 되는 학생들=결국 높은 취업문턱을 피해 공무원직 등 고시의 길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 또한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5급 행정고시는 물론이고 7급이나 9급 역시 3년 이상을 각오해야 하는 게 요즘 세태다. 3년 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가 지금은 9급 시험을 준비 중인 진모(26)씨는 "원래는 공연 기획자를 꿈꿨지만 취업난 걱정에 이 길을 택했다"며 "하고 싶은 일도, 사회생활도 못하는 지금이 가끔 두려울 때가 있다"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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