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 행사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펀드 수익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주주로서 회사경영에 참여해 기업가치를 향상시켜야 펀드 수익률도 높아진다. 이에 대한 펀드 투자자들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펀드 자본주의’란 말로 기업의 투자의욕 감퇴 등 부정적인 요인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기관들은 다른 주주들의 찬반비율대로 의결권을 분할하는 ‘그림자 투표(shadow voting)’나 단순 거수기 행태에서 벗어나 발언권을 강화하고 의결권도 적극 행사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사회책임투자(SRI)펀드의 원조격인 ‘Tops아름다운SRI주식1’을 운용하는 김성기 SH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의결권 행사 등을 통해 경영진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펀드 수익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판단돼 부분적으로 경영 참여를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도 지난 2005년 12월 재개정한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라 올해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부방침을 정하는 등 연기금들도 기관으로서의 목소리를 높여 가입자 이익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외국인 투자가도 가세,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압력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인들은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10조원 이상을 순매도했지만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종목 수는 오히려 더욱 많아져 개별 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한층 커졌다. ◇기관,“올해 주총에서 의결권 적극 행사하겠다”=4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기관투자가가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법인수(유가증권ㆍ코스닥시장 포함)는 지난 2006년 말 현재 337개사로 2004년 203개사, 2005년 325개사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이중 자산운용사가 5% 이상 보유한 기업은 242개사에 달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006년 말 현재 가장 많은 42개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신영투신운용(40개), 한국투신운용(33개), 한국밸류자산운용(22개), 대한투신운용(14개) 등의 순이다. 적립식펀드 투자가 붐을 이루면서 주식형펀드 수탁액이 지난해 연초 26조1,784억원에서 연말 46조4,894억원으로 20조원 넘게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 투자기업의 가치가 하락하면 해당 기업의 주식을 팔아치우고 떠나는 ‘월가의 법칙(wallstreet rule)’을 따르거나 의결권 행사 때에도 다른 주주들의 찬반 비율대로 의결권을 분할하는 ‘그림자 투표(shadow voting)’를 실시하던 데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올해부터 주총 안건별로 의결권 행사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외국계 지배구조개선 펀드의 영향력 행사 여부도 관심=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의 한국주식 매도와 관계없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하는 건수는 오히려 매년 늘어나면서 5% 이상 지분보유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2003년 1,105건에서 지난해에는 2,525건으로 급증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경영권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는 싱가포르 소재 템플턴자산운용은 “투자대상기업이 지배구조원칙 등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소수주주권 행사 등을 통해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설적인 가치투자자인 벤자민 그레이엄의 직계로 꼽히는 바우포스트그룹(The Baupost Group) 역시 경영권 참여를 목적으로 투자했다고 명시, 올해 주총에서의 움직임이 관심을 끌고 있다. 경동제약ㆍ삼일제약ㆍ한신공영ㆍ삼천리 등을 5% 이상 보유하는 바우포스트그룹은 “수시로 투자회사 경영진에게 배당 증액, 적절한 경우 회사 주식 매입, 회사 자금의 효율적 배분 등을 포함해 주주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제안한다”는 방침이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는 “ 펀드 이름만 봐서는 투자 성향을 알기 어렵다”면서 “‘장하성펀드’ 사례를 보고 외국계 지배구조개선 펀드들이 속속 한국에 진출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주총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 대책마련 부심=주총 시즌을 맞아 상장사들은 이미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기관ㆍ외국인 등 주요 투자가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회사의 배당정책과 실적전망 등을 설명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국내 투자자들을 대하는 상장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면서 “예전에는 기업관련 자료를 요청하면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최근에는 먼저 자료를 들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장하성펀드로 알려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가 등장한 후 외국인이 1주만 사도 겁난다는 기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부터 증권 집단소송제가 전면 시행되고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이 보다 막중해지면서 기업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 상태다.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올해 3월 말까지 분식회계 자진해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 같은 기업들의 고민은 한국상장사협의회가 오는 7일 상장사 CEO를 대상으로 개최할 예정인 증권집단소송 대비 세미나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데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당초 170명 안팎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 계획이었으나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400개 업체에서 참가를 신청, 참석대상을 제한하기로 했다고 상장사협의회 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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