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와 석유화학 업계 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수익성을 강화하고 신사업을 찾기 위한 업체들의 노력이 이어지면서 정유사들과 석유화학사들이 서로의 전통영역을 넘나는 일이 많아졌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4사는 모두 최근 잇따라 석유화학제품 생산 공장을 준공하거나 증설투자를 단행하며 석유화학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원유도입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 연료유를 정제하고 판매하는 단계를 정유사 영역으로, 원유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이용해 화학제품 및 원료를 만드는 단계를 석유화학업체의 영역으로 본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각각 2014년 상반기와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울산에 연간 100톤 규모의 파라자일렌(PX)공장을, 인천에 130만톤 규모의 PX공장을 건설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75만톤의 PX공장과 876만5,000톤 규모의 PX 원료(BTX)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국내는 물론 싱가포르에도 22만톤가량의 생산지분을 가지는 PX공장도 짓고 있다.
PX는 폴리에스테르 섬유나 페트병의 주재료 원료가 되는 성분으로 현재 석유화학사 가운데서는 삼성토탈이 생산하는 품목이다. 삼성토탈 역시 현재 생산규모인 연 60만톤 외에 연산 100만톤 규모의 신규 공장을 건립하고 있어 경쟁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은 "건설이 마무리되면 국내 최대 규모인 총 연산 278만톤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GS칼텍스도 지난해 4월부터 PX공장을 증설 중이다. GS칼텍스는 일본 쇼와셀 및 다이요오일사와 함께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전남 여수공장의 PX 생산시설을 증설해 연간 생산량을 100만톤 더 늘린다. 공사가 끝나면 GS칼텍스 여수공장의 PX 생산능력은 연간 135만톤에서 235만톤으로 늘어난다.
현대오일뱅크는 3일 제2 BTX 설비를 준공하고 석유화학 생산능력을 기존 연 50만톤(PX 38만톤, 벤젠 12만톤)에서 150만톤으로 최대 3배까지 늘렸다.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석유화학 비중도 9%에서 14%로 늘어나게 된다.
정유업체들의 이 같은 석유화학 강화 움직임은 정유사업이 영업이익 폭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연관성이 큰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전략이다. 실제 S-OIL의 경우 총 1조3,000억원을 투자해 2011년부터 PX생산량을 기존 70만톤에서 180만톤으로 늘린 후 석유화학 부문에서 높은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S-OIL은 지난해 정유 사업에서 3,473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반면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8,319억원의 영업흑자를 올렸다. 권오갑 현대오일뱅크도 제2BTX준공을 기념하며 "그동안 정제 분야에 치우진 회사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데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체가 정유사의 영역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한화케미칼은 최근 미국기업과 공동으로 셰일가스 생산기지 설립을 검토 중임을 알렸다. 원유나 천연가스 개발은 전통적으로 정유업체의 영역이었다. 실제 GS역시 셰일가스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셰일가스를 이용하면 일부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 때 석유 원료를 쓸 때보다 생산비를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만큼 직접 생산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천연가스 및 미국 셰일가스의 부상, 경기 침체 등의 요인 맞물리면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라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일반화학인 2차 전지 분야에서도 신사업이 겹치는 등 앞으로 정유 및 화학 업계의 경쟁구도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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