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ㆍ경마ㆍ복권 등으로 대표되는 사행산업은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다. 국민에게 여가를 선사하고 공익기금 조성을 통해 다양한 국책사업을 가능하게 하지만 지나칠 경우 도박중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늘려 나라 곳간을 오히려 축낼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복권 발행 한도를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국내 사행산업의 구조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이달 말 복권ㆍ경마ㆍ경륜ㆍ경정ㆍ카지노ㆍ토토 등 6개 사행산업의 올해 매출 총량 한도를 결정할 예정이다.
재정부는 국내 복권의 발행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낮아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마사회와 카지노 업계는 복권 한도 확대로 자신들의 '파이(총량)'가 줄어들까 조마조마한 모습이다. 시민단체 등은 정부의 복권 발행 한도 확대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서 사행성을 조장한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학계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사행산업이 경마 등 도박성이 강한 업종에 편중돼 있어 구조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필요악으로서 존재하는 거대 사행산업 구조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사행산업 총매출 10년 만에 두 배로 껑충=3일 재정부와 사감위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사행산업 총 매출(잠정)은 18조2,293억원에 달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합법적 사행산업 매출액은 지난 2001년 9조6,448억원을 기록한 후 등락을 반복하다 결국 1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경마의 매출이 7조7,862억원으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복권 3조804억원, 내외국인 카지노 2조2,798억원, 경륜 2조5,004억원, 토토 1조8,478억원, 경정 7,347억원 등의 순이다.
경마ㆍ경륜ㆍ경정 등 이른바 경주사업의 전체 매출액 합계는 11조213억원으로 사행산업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었다. 총 매출에서 복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17% 수준이다. 다만 지난해에는 사감위가 권고한 복권 발행 한도가 2조8,000억원이었는데 실제로는 연금복권 등의 영향으로 이보다 훨씬 더 팔려나갔다. 당시 사감위가 판매중단을 권고했지만 재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도박중독성 강한 경주산업에 편중돼 문제=도박중독 유병률이나 재정기여도 등 사행산업에서 파급되는 각종 요인을 들여다보면 경마ㆍ경륜ㆍ경정 등 경주산업과 카지노의 비중을 줄이고 복권 발행 한도를 늘리자는 재정부의 주장은 일견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사행산업 총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경주사업의 경우 사행성의 척도가 되는 도박중독 유병률이 대부분 80%에 육박한다. 카지노는 85%가 넘는다. 반면 복권은 20.3%, 토토는 35.3%로 이들 사행산업에 비해 사행성이 상당히 낮다.
경주사업의 사행성을 높이는 주요인 중 하나는 바로 장외발매소다. 순전히 '베팅'만을 위해 존재하는 장외발매소는 여가의 대상이 아니라 도박장이나 다름없다. 장외발매소 현황을 살펴보면 경마의 경우 2000년 25개소에서 2011년 32개소로 증가했으며 경륜은 2000년 11개소에서 21개소로, 경정은 한 개소도 없던 것이 지난해 15개소로 늘어났다.
재정기여도 역시 복권이 월등히 높은 편이다. 총 매출액 대비 조세ㆍ기금기여율은 경마ㆍ경륜ㆍ경정이 20%대 수준에 그치는 반면 복권은 43%가 넘는다.
재정확충을 위해 정부가 사행산업을 아예 포기할 수 없다면 실제 복권이 사행성도 낮으면서 재정에도 도움이 되는 건전한 사행산업이라는 것이다.
◇사행산업 전체 매출 증가는 막아야=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복권의 발행 한도를 늘리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자칫 복권의 발행 한도 확대가 전체 사행산업 매출 총량 한도의 에스컬레이션(증액)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행산업은 업종별로 주무부처와 수익금의 재정지출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집단 간 힘겨루기가 매우 심하고 정치권으로의 로비전도 치열하다.
카지노산업의 주무부처는 문화체육관광부(외국인 카지노)와 지식경제부(강원랜드 카지노)로, 경주산업은 농림수산식품부(경마)와 문화부(경륜ㆍ경정)로, 복권산업은 재정부 복권위원회(복권)와 문화부(토토) 등으로 어지럽게 나눠져 있다.
수익금의 재정지출 체계도 경마는 축산발전기금, 경륜ㆍ경정은 체육진흥기금으로 상당수가 집행되며 복권은 소외계층 지원 등의 공익사업에 주로 쓰인다. 월드컵경기장 등을 짓는 데는 토토가 막대한 역할을 한다.
이러다 보니 부처 간에도 사행산업의 어느 한 편만 늘리거나 줄이는 식의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사행산업 전체의 매출 총량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복권의 한도를 늘리겠다고 하면 경주산업이나 카지노산업이 양보해야 하는데 그 누구도 이를 조율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칫 복권 매출 확대가 전체 사행산업 매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부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연호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사행산업 매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위인데 복권 매출액은 23위"라며 "사행산업 전체의 매출을 늘리지 않는 상태에서 복권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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