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6월. 대선을 6개월여 앞두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 진영에 비상이 걸렸다. 기세 등등하던 지지율이 급락하기 시작, 10% 중후반까지 곤두박질쳤고 여권 내에서는 후보 교체론이 급부상했다. 이른바 ‘정몽준 대안론’이었다. 노 후보의 주변 인물들도 조금씩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흔들리는 노무현을 붙잡아준 5명이 있었고 이들은 노 후보를 권좌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 역할을 해냈다. 바로 이상수 노동부 장관과 정세균 의원, 임채정 국회의장, 신계륜 전 의원, 안희정씨 등 이른바 ‘2002년의 5인방’이라 불리는 인물들이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고려대 출신이었다. 이들은 노무현 후보에게 여론의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하면서 중심을 잡아준 ‘충직한 참모’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임기를 1년여 앞둔 지금. 청와대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의 현 상황을 보면서 당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론의 뭇매, 바닥에 머무르고 있는 지지율, 염동연 의원 등 측근까지 탈당 대열에 합류하면서 등을 돌리는 상황이 2002년의 그 모습과 닮은 꼴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개헌’을 화두로 레임덕을 차단하느라 절치부심하고 있고 덕분에 지지율은 조금이나마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재 노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핵심 참모들의 진용으로, 구성원들의 면면이 2002년 당시와 상당부분 닮은 꼴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병완(고대 신방과) 비서실장과 변양균(〃경제학과) 정책실장, 전해철(〃법학과) 민정수석, 박남춘(〃행정학과) 인사수석, 김용덕(〃경영학과) 경제보좌관 등 ‘신 5인방’으로, 2002년과 마찬가지로 이들 모두가 고려대 출신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 측근 외에 지근거리에서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사람들을 꼽으라면 이들 5명을 들 수 있다”며 “이들의 역할에 따라 대통령의 남은 임기 성과가 좌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현 참모들이 2002년 고난의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 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것. 목진휴 국민대 교수는 “노 대통령이 집권 후 2~3년 동안은 참모들의 얘기를 들으려 했지만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말하지 말라. 내 방식대로 한다’는 쪽으로 흘러간 것 같다”며 “참모들의 조언도 이제 의미가 없는 상황이 된 듯하다”고 진단했다. 참모들의 역할이 사전적 예방 차원이 아닌, 사고가 터진 이후 뒷수습에 급급한 ‘사후 해결(damage control)’에 집중하는 모습이 됐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연이은 즉흥적 발언과 격정적인 감정 노출도 결국 참모들의 역할 부재, 즉 ‘노(NO)’를 외치는 여과장치(참모)가 없었던 탓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노 대통령이 정치적 끈으로 연결된 일부 비서진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물론 청와대는 이 같은 지적에 펄쩍 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역대 정권 가운데 참여정부 만큼 대통령에게 ‘할말을 하는’ 정권도 드물 것”이라며 “대부분의 정책들은 다양한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통해 시스템에 의해 도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시스템이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망가진(?)다는데 있다. ‘실패한 작품’으로 꼽히는 신년연설도 결국 ‘말에 대한 과신’이 부른 참사라는 지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제ㆍ민생에 올인 하라는 주장을 ‘욕’이라고 강변하고, “언론에 굴복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규정한 노 대통령. 이에 맞서 “민생(경제) 올인이 교육과 환경을 덮으라는 뜻은 아닙니다”라고 직언을 할 수 있는 참모들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청와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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