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는 영화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적어도 비평부문에서만큼은 단연 한 사람의 이름을 먼저 꼽게 된다. 로저 에버트다. 24년간 동료평론가 진 시스켈과 함께 '에버트와 시스켈'이라는 TV영화쇼를 진행하며 명성을 모은 그는 때로는 명 문장의 영화평론가로, 때로는 세계유수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한편으로는 자신이 고향에서 직접 개최하는 영화제(오버룩드 영화제)의 개최자로 영화세계에서 자신 만의 굳건한 위치를 지켜왔다. '위대한 영화'는 이런 에버트의 30년간 '영화내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수록된 내용은 1997년부터 그가 시카고 선타임즈에 연재한 200편의 칼럼을 모은 것. 신작홍보위주로 흘러가는 영화계의 풍토 속에서 초창기 걸작들을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2003년 100편을 모아 첫 권이 나왔고, 이번에 나머지 100편을 추가해 완역됐다. 이 책 한 권으로도 웬만한 영화 역사는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책은 심도있고 방대하다. '국가의 탄생', '전함 포템킨'등 영화사 초기를 수놓은 걸작부터 '뜨거운 것이 좋아', '사랑은 비를 타고' 등 우리에게 친숙한 할리우드 황금기의 영화들, '대부', '스카페이스', '쇼생크 탈출'등 비교적 최근작까지 다뤄져 있다. 게다가 여타 평론가들에겐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대중들에겐 친숙한 '스타워즈', '죠스', '레이더스' 등의 영화들까지 언급돼 있다. 에버트는 오랫동안 신문영화비평을 해온 기자 출신답게 어려운 영화적 상징이나 복잡한 영화기법 등은 내용에서 상당부분 배제한다. 글에서 에버트가 강조하는 것은 스토리의 질감이나 영화에서 느껴지는 정서 등이다. 일반 관객과 거의 같은 관점에서 영화를 비평하는 셈이다. 따라서 예술영화로 가득찬 어려운 영화해설서를 읽는다기 보다는 대가의 친절한 안내로 세계영화를 탐험한다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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