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더위에 냉방수요가 발생하면서 전력수급이 벌써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전력당국은 주간예고제 등 수요관리를 실시하며 비상대처에 들어갔지만 이른 더위가 계속될 경우 전력 위기는 여름이 끝날 때까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번주 최대 전력공급 능력은 6,500만㎾ 수준인데 반해 최대전력수요는 6,250만㎾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부가 수요관리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예비전력은 최소 250만㎾까지 떨어져 전력경보 '주의' 단계까지 발령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다.
초여름이 찾아오기도 전에 전력수급에 문제가 생긴 것은 평년보다 2~6도가량 높은 날씨가 지속되면서 전력피크에 200만~300만㎾가량의 냉방수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부 상업시설을 중심으로는 벌써부터 시스템 에어컨이 가동되고 전자제품 판매 매장에서는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전력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이날도 전력경보 관심단계(400만~500만㎾)가 발령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거래소가 수요관리를 실시하면서 약 80만㎾의 전력을 감축해 500만㎾ 이상의 예비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력수요가 늘고 있지만 공급 능력은 좀처럼 확보되지 않고 있다. 국내 전력의 30%를 담당하는 원전이 9기나 고장ㆍ정비 등으로 멈춰 섰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월성1호기는 수명이 완료돼 수명연장 여부가 연말까지 논의될 예정이고 한빛(영광) 3호기는 부품결함 등의 이유로 재가동 여부가 다음달에 결정된다. 이밖에 고리 1ㆍ2호기, 신고리 1호기, 월성 2호기, 한울(울진) 2ㆍ4ㆍ6호기가 모두 계획예방정비를 받고 있다.
이들 원전의 정비가 끝나면 이달 말부터 다음달 중순까지 신고리 2호기, 월성 3호기, 신월성 1호기 등이 순차적으로 정비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여름철에도 총 23기 원전 가운데 적어도 5~6기가량의 원전은 가동을 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값비싼 LNG나 등유 발전소를 가동하거나 수요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력당국은 오는 23일과 24일에도 예비전력이 247만㎾, 240만㎾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주간예고제와 수요자원시장 개설 등 수요관리제도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당국은 또한 23일 기상청의 장기예보가 나오는 대로 하계 전력수급 대책을 마무리해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의 하계 전력수급 대책에는 개문 냉방 행위 단속강화, 산업체 휴가일정 조정, 선택형 최대피크 요금제(CPP) 확대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
한편 올겨울부터 140만㎾급 대형 원전 신고리 3호기 가동을 통해 전력난에서 벗어나려 했던 정부의 계획도 궤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영남지역으로 수송하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주민들의 반발로 계속해서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지난 20일 8개월 만에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했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절반 가까운 현장의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무리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각종 시민단체와 민주당 지도부까지 이날 밀양을 방문하면서 공사는 더욱 장기화될 조짐이다. 8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밀양 송전탑 공사가 12월까지 끝나지 않으면 신고리 원전을 100% 출력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올겨울 전력수급 역시 다시 살얼음판을 걸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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