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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년으로 본 금융역사

민족은행… 일제수탈기구… '영욕의 세월' <br>97년 외환위기이후 대규모 구조조정 아픔 겪기도

국내 최초의 일반은행은 민족의 힘으로 설립됐다. 지난 1896년 조선은행이 최초 은행으로 설립됐고 이후 한성은행ㆍ대한천일은행이 민족 스스로 힘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치하에서 민족은행들은 영업 부진으로 스스로 문을 닫거나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업됐다. 이후 설립된 조선은행ㆍ식산은행ㆍ금융조합ㆍ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은 노골적으로 일제 수탈의 도구로 이용됐다. 은행의 대출은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거나 수출가공업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에게 집중됐으며 군수산업과 연관된 공업대출이 주력을 이뤘다. 광복 후 일제가 전쟁비용 조달을 위해 은행들에 강제로 떠안긴 일부 국채, 군수회사의 회사채도 고스란히 손실로 남았다. 1960년대 이후 은행은 국가의 경제정책을 전달하는 도구로 금리는 시장이 아니라 정책에 따라 결정됐다. 은행권, 비은행권, 사채시장별로 각기 상이한 금리가 할당됐으며 정부는 산업 부문별로 대출의 우선순위와 한도를 정해 은행에 하달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은행권에 민영화ㆍ자율화ㆍ개방화 분위기가 이식되기 시작했지만 은행 설립 이후 이어져온 관영 통제의 사슬을 끊는 데에는 역부족. 형식적이나마 민영화된 은행들은 담보와 상호보증 능력이 있는 대기업 집단에 여신을 몰아줬고 이는 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겪게 됐다. 97년에 발생한 금융위기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한국의 은행사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폭발적인 구조조정의 계기로 작용했다. 100여년 이상의 역사가 있는 상업은행이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ㆍ우리은행으로 간판을 바꿨다. 상업은행보다 좀더 오랜 역사를 지닌 조흥은행은 강원은행ㆍ충북은행과 합병한 후 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됐다. 주요 국책은행 중 하나였던 외환은행과 한미은행, 제일은행은 외국계은행으로 변모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그룹 지주회사의 휘하로 들어갔다. 금융권뿐 아니라 감독기구도 변신을 거듭해 99년에는 은행, 증권, 보험 감독원을 통합한 금융감독원이 출범했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장은 “금융회사들의 외적인 구조조정은 끝나가지만 질적인 개선이 더욱 필요하다”면서 “은행이 우량한 가계 및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선순환과 최고 수익성을 추구할 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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