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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묘문화에 대한 단상/임종건 부국장 겸 사회부장(데스크 칼럼)
입력1997-09-19 00:00:00
수정
1997.09.19 00:00:00
임종건 기자
3천만의 대이동이라는 추석연휴가 끝났다. 이번 추석에 고향을 찾아 조상의 묘소를 찾은 성묘객들은 예년과 다른 감회를 가졌음직하다.정부가 묘지 보존기간을 75년으로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추석전에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현존하는 모든 묘소는 앞으로 30년간 사용하고 그 뒤 15년간 3차례까지 사용기간을 연장한 뒤 75년후면 없애도록 하고 있다. 그 때가 되면 유골을 파내 화장을 한 뒤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재로 뿌리고 묘지는 산지로 되돌려야 한다.
묘지문제에 대한 정부발표가 있을 때마다 해마다 여의도 두배만한 면적이 묘지화한다는 정부의 설명이 뒤따른다. 전국 산하를 묘지로 뒤덮이게 할 수는 없다는 일견 당연한 논리가 정부정책의 배경을 이룬다.
이같은 정부의 묘지사용기간 제한에 대해 어떤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펄쩍 뛸 것이다. 조상숭배 전통을 무시하는 불효막급한 발상이라고 개탄할 것이다. 다른 이는 요즘의 세태를 들어 75년이후라면 3세대 뒤의 일인데 그때까지 남아 있을 묘가 몇이나 될까 라며 그것도 길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현재도 공원묘지에 들어가려면 대개 15∼20년후에 묘소를 비워준다는 계약을 해야만 한다. 공원묘지제도가 시행된지 일천해서 아직은 무연고 묘소가 그다지 많지 않으나 10년안팎의 무연고 묘도 늘어나고 있으며 이같은 추세는 갈수록 더할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노후를 자녀에게 의탁하겠다는 부모는 절반도 안된다. 신세대 부모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하다. 죽은후 자녀들로부터 제삿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십중 팔구는 부정적인 답변을 하게될 것이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장묘문화나 제례전통이 바뀌게 될 것임을 엿보게 한다. 현행 장묘 및 제례문화는 농경사회의 대가족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회구조가 산업사회로 진전하면서 이같은 전통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흙에 대한 의식은 시멘트와 아스팔트의 도회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에게는 덜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핵가족화 현상도 변화의 요인이 될 것이다. 과거 대가족제에서는 여러 자손중에서 한 사람정도는 농촌에 남아 제사를 맡고 조상의 묘소를 돌봤다. 그러나 지금은 한두자녀로 그치는 가정이 태반이다. 그 중에는 딸만 둔 가정도 있고 아들하나 딸하나로 그치는 경우도 많다.
외아들이 부모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 가정이 태반이 되는 셈이다. 딸만 둔 가정에서는 사위에게 제례와 묘소관리를 의탁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제사나 묘소를 돌볼이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묘소가 20만개 새로 생길 동안 7만개의 묘가 무연고로 버려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평균 성묘횟수도 유럽이 연간 14회인데 우리는 2회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외국도 할아버지묘까지는 후손들이 관리하지만 증조부부터는 돌보는 이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사회에서도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많은 묘소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무연고 묘로 자연환원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호화분묘이다. 호화분묘는 조상숭모의 뜻도 있겠지만 산 자의 과시욕이 얼마간은 개재돼 있는 경우가 많다. 온갖 석물로 치장해서 자연환원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묘소의 호화로움을 빌어 천년만년 후세들이 기억해주기를 기대할지 모르나 그것은 후세인에게 맡길 일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묘소는 후세에 의해 재평가돼 자손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를 흠모하는 모든 사람에 의해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묘지의 운영도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장묘문화와 관한한 국가는 국민을 계도할 책무가 있다. 대통령묘역 장군묘역 사병묘역 등으로 면적이나 크기에 차등을 두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케네디 대통령의 묘소는 다른 묘소보다 웅장한데 이는 그곳이 케네디 가묘자리이고 관리도 개인이 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공직자나 군인만이 아니라 사회에 공헌한 민간인들에게도 국립묘지에 묻힐 기회를 준다.
호화분묘는 개인들이 조상의 묘를 대통령묘나 왕릉처럼 꾸며보겠다는 욕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호화분묘를 조장하면서 민간의 묘소에 제한을 가하려 한다는 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다.
장묘문화가 바뀌기 위해서는 생의 업적을 묘의 크기로 남기려 하기보다 기록으로 남기려는 국민적인 의식의 전환이 앞서야 한다. 흙에서 태어났으므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인식의 전환도 있어야 한다.
정부의 할 일은 이같은 의식개혁에 집중될지언정 묘지사용기간 제한이라는 뜬금같은 발상을 할게 아니다. 역사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묘지만을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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